2024-04-26 00:58 (금)
정리정돈으로 여는 새 세상
정리정돈으로 여는 새 세상
  • 김혜란
  • 승인 2016.03.02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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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봄이다. 대청소해야겠다. 옷장 정리도 해야겠구나. 책상도 치워야지. 냉장고도 손봐야지.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소와 정리정돈이다. 사람마다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략 국민의 절반 이상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세상살이 중 정리정돈이 제일 어려운 항목이다. 자주 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책상 앞이나 화장대로 가서 하나씩 엎는다. 그리고 위생봉투를 가져와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모두 봉투에 쓸어 담는다. 남은 것들을 챙겨서 다시 여유 있게 배치한다. 두 번째 방법은 그 공간에 필요 없는 것들을 일단 다 끌어내서 다른 공간에 놓거나 안 보이는 공간에 쟁여 넣는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정리정돈이 아니다. 자체를 없애 버리거나 단지 장소를 바꾼 것에 불과하다.

 책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15분 정리부터 단순하게 살기 위한 정리법이거나, 정리를 잘하면 부자가 된다거나, 인생이 빛나는 정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리란다. 심지어 정리정돈을 잘하면 성적이 오르고, 정리는 철학이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리하면 홀가분해져서…. 온 세상살이가 정리에서 시작해서 정돈으로 끝나는 것처럼 온통 정리정돈론(論) 철학이다.

 올해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정리정돈을 못해서 인생이 이 정도인가 싶다. 워낙에 안되어서 지능이 모자란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정리만 해볼라치면 머리가 욱신거리고 일들이 생겼다. 정리하다가 중간에 만난 것들은 정말 중요한 일의 실마리를 주거나 그동안 찾고 있었던 보석을 담고 있었다. 당연히 정리는 작파하고 그냥 주저앉아서 관련 책을 더 뒤지거나 노트북을 켜서 당초의 목표(?)를 잃고는 옆길로 새서 빠져들었다.

 책부터 이야기하자. 책 한 권 잡으면 읽어 나가다가 관련된 다른 책이 불현듯 더 보고 싶어진다. 또 산다. 그 부분을 읽는 다음, 어딘가에 꽂아 둔다. 그리고 대부분 잊는다. 가끔 관련 강의를 하게 되거나 글을 써야 하면 그때 그 책 어디 뒀더라 하면서 열심히 찾아서 본다. 정신없이 꽂혀진 책들을 보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그래, 책 사두기 잘했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그렇게 해서 산 책이 수백 권, 아니 수천 권은 되지 싶다. 책장이 아니라 쓰레기장이라고 단언한 적도 있다.

 다행히 취미생활로 여타 물건을 사는 일은 적은 편이었다. 그런데 같이 사는 사람이 그걸 한다. 책장 위에는 어디 미국이나 캐나다 계곡에서나 돋보일 램프와 열기구 등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쓸데없이 쌓여 있는 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주장한다.

 다음은 음식종류인데, 나중에 먹을 거라면서 넣어 둔 음식 재료 중 30% 이상은 버린다. 어릴 때 굶지도 않았건만 이상하게 냉장고 안이 비면 허전하다. 그냥 마트를 안 가야지. 먹고 싶어도 참아야지. 암튼 마트에서 산 물건이 쌓여있거나 하는 편은 아니니 다행이다. 결국 책과 강의 관련 서류가 가장 문제다. 현자들은 말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 빈손 빈주먹으로 나온다.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챙겨 쥐면서부터 인생에 빈틈이 사라졌다. 여유와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물건은 잠시 그때 행복뿐이라고….

 사실, 여기서 늘 한계에 걸려 넘어진다. 책은 물건인가 아니면 생각인가에서 걸리는 것이다. 이성(理性)은 이렇게 충고한다. 머릿속에 들어있고 사유를 통해 삶에 활용 내지는 응용해야 하는 것이 지식이고 지혜이지, 쌓여있기만 한 책들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만 더 해줄 뿐이라고. 지나치게 많이 가진 무엇인가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게 하고, 뭔가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겨서 더 끌어 모으게 만든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아니냐고.

 스티브 잡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가 만들어낸 물건은 하나같이 불필요한 부분을 줄여서 되도록 간단하게 만든 것이었다. 아이폰에는 버튼이 하나밖에 없고, 맥 북에는 설명서도 없으며 케이블도 없다. 설명서 없이도 쓸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구성이란 뜻일 것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다 보니 물건도 그렇게 만들었고 그게 현대인의 구미에 맞아 떨어져서 세상을 떠난 지금도 그의 아이디어는 사랑받고 있다.

 마더 테레사 역시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것은 오래 입은 낡은 사리와 손가방, 샌들 정도였다고 한다. 디오게네스는 몸에 걸친 천 한 장뿐이었다고 한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하나만 남겠지. 그거 빼고는 다 없애는 것이 정리정돈이다. 그러다 보면 목표도 명쾌해질 것이다. 이것도 해야겠고 저것도 해야겠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이것을 해야 하는 걸로. 집중도 훨씬 잘 될 것이라고 예측 가능하다.

 올봄, 간단명료해진 내 물건과 삶을 통해 복잡한 세상도 간결하게 정리해서 볼 수 있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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