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ㆍ호(字ㆍ號)’ 사용한 동기는 ?
‘자ㆍ호(字ㆍ號)’ 사용한 동기는 ?
  • 송종복
  • 승인 2016.03.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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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예기(禮記)’에 남자는 20세에 관례를 행하고 자를 짓고, 여자는 혼인을 약속하면 계례를 행하고 자(字)를 짓는다. 이같이 자를 짓는 것은 그 이름을 공경해서이다. 어른이 된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출생한 후부터 갖게 된 이름(名) 이외에 누구나 널리 부를 수 있는 별도의 칭호가 필요하게 돼 자를 짓는다. 자는 부모나 집안어른이 지어주는 것이다. 이런 자를 지을 때는 일반적으로 이미 지어진 이름(名)과의 연관해 짓는다.

 ‘조선실록’을 보면 이성계의 자는 중결(仲潔), 호(號)는 송헌(松軒)이다. 왕이 된 후 이름(名)은 단(旦)으로, 자는 군진(君晉)으로 고쳤다. 따라서 이성계는 아명(兒名)이다. 조선의 태조는 이성계라 하지만 ‘조선실록’에는 태조가 이단(李旦)으로 돼 있다. 또한 ‘삼국유사’의 저자는 김견명(金見明)인데 법명(法名)인 일연을 쓰고 있다. 이같이 본명과 법명도 모르고 조선의 태조는 이성계, ‘삼국유사’의 저자는 일연이라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호의 종류에는 아호ㆍ당호ㆍ택호ㆍ시호(諡號) 등이 있는데, 아호는 문인ㆍ학자ㆍ화가ㆍ서예가가 즐겨 썼고, 당호는 그 집의 주인을 일컬어 썼고, 택호는 벼슬이름이나 출신지를 붙여 그 사람의 집을 부르고, 시호는 선왕의 공덕이나 재상ㆍ학자 등의 행적을 칭송해 임금이 추증한다. 그 중 호는 누구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호칭이다. 그래서 주로 거처하는 곳,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호로 짓는다. 현대시인 김상옥(金相沃)은 호가 20개나 되며, 김정희는 호가 503개나 된다. 그 중 김상옥은 10자나 되는 ‘칠수삼과처용지거주인(七須三瓜處容之居主人)’의 호가 있다.

 최근에는 한자가 아닌 순수 한글로 짓는 이도 있다. 주시경은 한힌샘, 이병기는 가람, 최현배는 외솔, 전영택은 늘봄이다. 요즘은 호 대신에 주로 필명(筆名: pen-name)을 쓰는데 DJ(후광), YS(거산), JP(운정) 등 영어의 첫 글자로 표기하는 것도 있다. 이들은 주로 고관직을 호칭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필자가 경험컨대 B대학 2년 재학시절 정다운 친구 3명이 있었다. 3총사란 어색하다며 세 친구가 주석에서 서로 호를 지어주기로 했다. 국문과 친구는 여수(如水)로, 사학과 필자는 여죽(如竹)으로, 무역과 친구는 여암(如岩)으로 짓고는 항시 3여(如)라 했다. 이같이 다정한 친구끼리 상호 간에 호를 짓는 것이 제일 무난하다. 그 후 사회생활이 넓고 보니 고향인 안곡(安谷)으로 호를 다시 바꾸니 대개가 다 알아 차려보는 것을 알았다. 이같이 무슨 연고나, 희망이나, 취득한 유ㆍ무형의 물건을 소재로 해 호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신의 호를 지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지었다는 설명이 있어야 하고, 혹 남이 지어줄 때는 그 글자의 출전이나 뜻을 밝힌 글을 써 주어야 한다. 이름은 임금, 부모, 스승이 아니면 부를 수 없는 것이고, 자는 선배나 친구가 존중해 부르는 것이며, 호는 아무나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인들이 쓰는 풍아한 취미를 엿볼 수 있는 퇴계, 율곡, 성호, 다산 같이 주거지를 위주로 하면 좋은 호가 되리라 본다. 오늘날에는 사회체제가 다원화되면서 2종 이상을 쓰는 호보다는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학ㆍ예술ㆍ종중에서는 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호를 통해 세계관과 인생관 및 인격의 일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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