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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鬪局(화투국)
花鬪局(화투국)
  • 송종복
  • 승인 2016.02.24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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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花:화 - 꽃 鬪:투 - 싸움 局:국 - 판

 화투놀이로 도박을 유도하며 가산을 탕진하게 만드는 관청이다. 이는 왜놈들이 서울과 각 항구마다 설치했는데, 특히 을사5적신이 화투놀음에 앞장섰다는 것에 치가 떨린다.

 조선 말기 황헌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 중에 1906년의 내용을 보면 화투국이 나온다. ‘예전부터 서울과 시골 여러 곳에는 투전(鬪錢)과 골패(骨牌) 같은 도박을 했는데, 갑오년(1894) 이후 도박은 저절로 사라졌지만 요사이 왜놈들이 서울과 각 항구에 화투국(花鬪局)을 설치했다. 돈을 놓고 도박해 한 판에 만전(萬錢)도 던지니 우둔한 양반이나 못난 장사꾼들 중 파산하는 자들이 잇달았다.’고 적혀 있다.

 이로 보아 일제는 조선에 화투놀음을 적극적으로 퍼뜨린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일본은 을사보호조약이라 칭)을 강제 체결할 때 이 조약을 찬성하며 서명한 을사5적신(乙巳五賊臣)인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이 화투를 즐겼다고 한다. 1914년 이마무라 토모가 쓴 <조선풍속집(朝鮮風俗集)>을 보면 조선의 놀음[도박]은 10여 종이다. 즉 ①투전(鬪箋), ②골패(骨牌), ③화투(花鬪), ④척사(擲柶, 윷), ⑤마전(馬田, 말윷), ⑥시암위(矢岩爲, 야바위), ⑦십인계(十人契), ⑧토전(討錢), ⑨시패(詩牌), ⑩쌍륙(雙陸)이다. 이로 보아 왜놈은 조선을 의도적으로 도박망국으로 기록한 책이다.

 화투의 역사를 보면 16세기 포르투갈인 선교사와 상인이 일본에 총, 카스텔라, 가르타(carta:카드놀이)를 전파했다. 당시 도요토미[豊臣秀吉]는 ‘가르타[도박]’ 놀이를 금지시켰다. 그 후 ‘가르타’를 풀과 꽃으로 변형하여 ‘하나후다[花札]’로 바꿨다. 그런데 지방마다 디자인이 달라서 메이지[明治] 시대에 ‘하치하치하나[八八花]’라는 화투를 만들어 놀이 겸 도박 행위를 한 것이다. 메이지 정부는 ‘화투금지’를 풀어주는 대신 화투공장에 세금폭탄을 때려서 하나둘 문을 닫게 만들었고, 화투놀이도 사그라지고 말았다. 당시에 일본에서 수입하던 화투를 지금은 우리가 제조해 일본으로 역수출하고 있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 칼’하다.

 일제는 화투가 망국의 원인이라고 자국에서는 금지시키고, 그 대신 식민지국[조선]에 전파시켜 나라를 망치게 만들었다. 이런 사연도 모르고 우리는 세 명만 모이면 화투놀이로 밤을 샌다. 가정집, 초상집, 술집에서 놀이가 대단하다. 심지어 화투를 미화해 공산명월(空山明月), 우중행인(雨中行人), 노송백학(老松白鶴), 난간앵화(欄干櫻花), 단오동(丹梧桐), 벽오동(碧梧桐) 이라고 풍류 있게 불러왔다. 요즘은 48P 만화책 또는 동양화로 부르면서, 심지어는 고스톱을 못하면 왕따를 당하는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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