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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너마저
미용실, 너마저
  • 김혜란
  • 승인 2016.02.24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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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거짓말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케이블 TV에 나온 가족소통 전문가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거짓말 3위가 ‘내일부터 다이어트 할 게’이고,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거짓말 2위는 ‘이거 싼 거야’, 1위는 ‘나 돈 없어’란다. 오차범위도 정해져 있지 않고 전 국민 대상도 아니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중 1, 2위는 경제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2위인 ‘이거 싼 거야’하는 말이 눈물겹다. 남편들이 아내들 돈 쓰는 일에 대해 굉장히 어두운 종목이 하나 있다. 바로 미용실 관련 비용이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파마비용을 말할 때 ‘0’을 하나 떼버리고 말한다고 하겠나. 20만 원짜리 파마를 했으면 2만 원짜리라고 말해도 상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머리 가꾸는데 쓰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다. 화장은 제대로 하지 않아도 머리만큼은 고급스럽게 하는 것에 만족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웬만해서는 그 차이를 잘 모른다.

 골목마다 몇 개씩 미용실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요즘 남자들이 은퇴 후 차리는 치킨집만큼, 여자들이 결혼 후 돈벌이에 뛰어들 때 자주 선택하는 아이템이 바로 미용실이었다. 손재주 있는 여자들은 몇 개월 학원 다니고 자격증 취득 후 미용실에서 현장 감각을 익히면, 곧바로 자신이 사는 동네나 아파트 단지 내에 가게를 낼 수 있었다. 새 아파트 단지 생기고 나면 가장 빨리 자리 잡는 것이 미용실이었다. 물론 그 가운데 단골손님 생기는 기간을 못 견뎌서 문 닫는 곳도 있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입소문이 나면 단골들이 꽤 많아지는 곳도 있었다. 당연히 싼 가격대도 한몫을 했다.

 주부들의 부업으로 참 괜찮은 종목이 미용업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프랜차이즈 헤어숍에 밀려서 그 부업도 쉽지 않게 되었다. 외국유학파들처럼 보이는 헤어디자이너들은 머리는 물론, 미용실 내부 인테리어에 부가서비스까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면서 프런트에서는 입이 딱 벌어지게 이용료를 불렀다. 맙소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미용실과 프랜차이즈 헤어숍과는 뭔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여겼다. 파마의 작은 마무리 하나, 커트 기술의 유행, 심지어 머리 감기는 기술까지 다르다고 믿었다.

 가정형편이 힘들어지면 노력한다. 어느 헤어숍이, 아니, 어느 미용실이 값도 싸고 기술도 좋은지를 수소문한다. 단번에 가격 대비 괜찮은 곳을 찾을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을 때도 많다.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달 정도는 세상이 다 우울하다. 그렇게 여러 번 지옥을 경험하다가 가격 대비 머리 모양도 괜찮고, 미용실 원장도 괜찮은 곳을 발견하면 그냥 단골이 된다. 폐업할 때까지 단골이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동네 미용실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가 돼 왔다.

 재벌들이 제과점에 이어서 미용업 쪽으로도 문어발을 뻗친다고 한다. 아직은 특정한 곳에서만 운영한다지만 불 보듯 뻔하다. 미용실을 헤어자격증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법인으로 만들어서 운영만 가능해도 할 수 있게 될 모양이다. 찬반양론이 맞선다. 프랜차이즈 헤어숍들이 너무 비싼 가격대로 운영되니, 재벌들이 법인 만들어 가격대를 싸게 만들 수 있어서 국민들에게는 좋다는 쪽과 프랜차이즈는 프랜차이즈이고 동네 빵집 전멸시키듯이 동네 미용실로 아이들 학원비 벌고 반찬값 벌던 주부들도 이제는 끝이라는 쪽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프랜차이즈 쪽도 실제로 심각하다. 가맹비 외에도 들어가는 돈들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름값으로 하는 장사이니 찍소리 못하고 받쳐야 하다 보니, 파마 한번 하는데 몇십만 원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돈 많은 여자들이 자기 돈 쓰는 것을 탓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수술대에서 목숨도 거는 판국인데,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재벌들의 문어발이 미용업까지 뻗치는 데 프랜차이즈 헤어숍이 기여한 것은 아닌지 원망이 된다. 쓰나미급 공포가 밀려온다.

 누구 말처럼 우리 삶 자체가 재벌들의 모든 업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실정이다. 재벌들의 마트에서 먹을 것을 사고 주말에는 재벌들의 영화관과 놀이공원에 놀러 가고 주 중에는 재벌 소유 회사에 돈 벌러 간다. 재벌이 만든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재벌계열 언론사의 기사를 읽고 방송을 본다. 이제 모든 국민들이 재벌들 소유 회사의 종업원으로 살아가야 할까. ‘빅 브라더’의 또 다른 현신이 재벌인 줄 진작 알아야 했는데…. 재벌의 은총에만 감읍하며 살아야 할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 분명한 사실은 재벌들은 절대 자애롭거나 착하지 않다. 그들의 속성은 오로지 돈벌이다. 사실, 재벌처럼 돈 많이 버는 꿈은 꾼 적 있어도 재벌가 여자들의 머리 모양은 흉내도 내지 않는다. 그냥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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