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먹어라’가 욕(辱)이 된 사연
‘엿 먹어라’가 욕(辱)이 된 사연
  • 송종복
  • 승인 2016.02.1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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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1965년 3월 30일자 경향신문 3면에 ‘고관의 감투 벗긴 무즙(무엿) 파동’이란 기사가 있다. 즉, ‘무즙은 엿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고관들의 감투도 벗긴다’는 말로 60년대 욕(辱)처럼 사용했다. 1960년대에는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렀다. 1965년도 중학교 신입생을 선발하기 위해서 1964년 12월 7일에 시험을 치렀다. 이 시험문제 가운데 과학 18번은 ‘엿’과 관련된 문항이다. 즉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다. ①디아스타제, ②꿀, ③녹말, ④무즙 중에 맞는 것은?.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 디아스타제이다.

 그런데 ④번 무즙도 답이 된다는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다. 디아스타제는 ‘아밀라제’의 약명이다. 아밀라제는 녹말을 분해해 소화하는 효소로써 우리 침 속에도 들어 있다. 그런데 문제의 보기 중에 ‘무즙’이 들어 있었다. 무에는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고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무즙 역시 정답이 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시험 이틀 후 12월 9일자 일간지 신문에 ‘무즙’을 답으로 써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진 학생의 부모들이 ‘난리가 났다’고 보도했다.

 중학교 입시문제 하나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다. 수험생 학부모들이 먼저 입시담당 기관에 항의를 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이 문제를 법원에 제소하기로 하고, 화가 난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무 엿’을 만들어, ‘무’로 ‘엿’을 만든 것을 입증시키기 위해 관계기관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 엿 먹어라! 무로 만든 무 엿 먹어라”고 던지고 소리치며 시위했다.

 “엿 먹어라. 이게 무로 쑨 엿이다. 빨리 나와 엿 먹어라. 엿 먹어. 무즙으로 쑨 엿 맛이 얼마나 맛있고 달콤한지 정부는 아느냐. ‘엿 먹어라. 엿 먹어” 소리치며 시위하니 결국 입시 당국은 무즙도 정답으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당시 최고의 명문인 경기중학교는 정원과 관계없이 38명의 신입생을 더 받아들여야 했다. 이때부터 ‘엿 먹어라’는 것은 ‘틀린 것은 바로 잡아라’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고, 이로써 바르게 하라는 식의 일종의 ‘욕’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이 행정소송으로 번져 무즙도 정답으로 승소하자 이 틈을 타서 경기ㆍ경북에서 특권층자녀도 ‘덤’으로 15명이나 입학시킨 일이 있었다.

 이에 소외 학생층 부모들이 또 궐기가 일어나자 청와대는 정무, 공보 두 비서관을 해임시키는 등 6개월이나 숱한 파란곡절을 겪었다. 이 ‘엿 먹어라’ 파동으로 이에 관련된 문교부(현:교과부)차관 및 보통교육국장, 서울시교육감 및 중등교육과장 등 8명이나 인책 퇴임시킨 일이 있었다.

 그 후부터 부정이나 잘 못한 행정기관을 비난하는 뜻에서 ‘엿 먹어라’, ‘엿 먹이면 된다’는 등 달콤한 엿이 ‘욕설’의 대명사로 쓰이게 됐다. 당시 ‘엿’ 때문에 6개월이나 소송이 진행된 점, ‘엿’ 때문에 38명이 추가 입학된 점, ‘엿’ 때문에 15명이나 덤으로 전입학이 된 점, ‘엿’ 때문에 고관들 8명이나 쫓겨난 점이 있다. 이로써 부정과 비리에는 ‘엿’을 먹여야 바로 된다는 뜻으로 ‘엿 먹이라’가 만병통치약이 된 꼴이다. ‘엿’ 먹이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엿’은 면역력이 떨어진다. 이제부터는 강한 ‘꿀’을 먹여야 되지 않나 생각된다. 따라서 ‘꿀 먹어라’는 말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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