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1:48 (목)
무조건적 아이 편들기 안 돼
무조건적 아이 편들기 안 돼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02.14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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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고등학교 한 학생이 무단결석을 했다. 알고 보니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어 슬퍼서 그랬단다. 선생님은 학교 교칙대로 무단결석 처리했다. 그랬더니 학생에 이어 학부모까지 선생님에 항의했다. 가족과 같은 개가 죽었는데 결석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며 단순 결석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단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무단결석은 진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교장선생님에게까지 압력을 행사해 고치려고 했단다. 슬픔을 이해한다 해도 규칙을 어긴 아이에 역성을 드는 것은 교육적으로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진학이 걱정됐다면 차라리 정상을 참작해달라고 사정하는 편이 올바른 태도다. 부모의 위력으로 자기의 잘못을 덮을 수 있는 경험을 자녀에게 주는 것은 자녀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이런 무조건적 자녀 편들기는 학교 교육현장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학교활동과 봉사활동, 성격, 성적, 취향 등 학생의 성장과정을 적는 학생부도 반쯤은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있는 그대로 좋지 않게 정확하게 적으면 학부모의 반발에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쳐달라는 압력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때론 애매한 표현으로 비켜간다. 거의 작문수준의 A4용지 10장 분량의 학생부를 적느라 방학을 꼬빡 보내야 한다. 대학 입시사정관들은 학생부에 적힌 뜻을 제대로 알려면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가정이 어느부턴가 자녀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이면에는 친구 같은 부모가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주술처럼 따라간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어두운 기억들이 집안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친구 같은 부모가 돼야한다는 최면을 건다. 그러나 친구 같은 것에서만 그친다면야 다행이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있다. 때론 친구가 아니라 머슴의 위치로 전락한다. 숙제도 대신해야 하고 봉사활동도 어디를 가고 하는 식으로 부모가 일일이 챙기는 경우가 많다. 음식도 아이 중심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안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모를 보기 어렵다. 아이가 싫어하는 것은 아버지가 하지 못한다. 엄마까지 가세해 타박하는 통에 왕따 안 당하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부모를 야단치는 아이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는 집안의 황제요 독재자인 경우가 많다. 부모의 권위는 없다. 이런 이상한 가정교육은 담장을 넘어 학교로 이어진다. 아이가 잘했건 못했건 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한다 싶으면 덮어놓고 학교로 달려가 삿대질을 한다. 학생 야단치기를 포기하는 선생님이 갈수록 늘어간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무서운 것이 없다. 당연한 결과지만 아이들은 더욱 멋대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집에서 제멋대로 큰 아이는 밖에 나가서 혼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라면서 부모가 문제거리를 모두 해결해 주는 통에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별의별 과외를 받는 경우가 생겨난다. 깨지고 상처받는 아름다운 성장과정이 생략된 아이는 커서도 어려움에 부닥치면 부모에게 호소한다. 고통을 이겨낼 내성도 없다. 그래서 욱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우리나라에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이 부쩍 회자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좌절감이 팽배해 있다.실제로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로 이어져 신분이 대물림되는 계층 고착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한 연구소가 중ㆍ고ㆍ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공비결을 물었더니 60%가 부모의 재산을 꼽았고 자신의 능력은 12%에 불과했다. 자신의 미래가 부모의 경제력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좌절감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계층 유동성을 잃어가는 사회에 있다. 그렇지만 오냐오냐 하며 키우는 가정교육에도 문제가 없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가 맹수처럼 달려들수록 강한 내성을 갖도록 하는 아이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지금 내 아이가 겪는 고통과 어려움이 이 아이를 더욱 강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학교에 달려가는 막무가내식 아이편들기부터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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