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6:05 (금)
죽음 앞에 선 우리
죽음 앞에 선 우리
  • 김혜란
  • 승인 2016.02.10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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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올해 설 연휴 내내 언론의 이슈는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연휴 첫날에 대만발 지진소식이 있었다. 대만 남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타이난시 주민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110여 명이 실종된 상태다. 사망자 가운데 수십 명이 부실공사로 지어진 빌딩에 있다가 희생됐다. 수백 명을 구조했지만 생존자 구조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사망자도 늘고 있다. 자연재해와 인재가 복합된 재난이었다.

 사망자와 직결된 것은 아니지만 가공할만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소식도 있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이었다. 장거리미사일인 광명성호의 발사는 소형화된 핵탄두를 싣는다면 미 백악관이 사거리에 포함된다면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논의를 공식화하고 있다. 몇 분 만에 쏘아 올릴 북한 미사일에 맞서서 미국의 사드가 얼마나 시간 맞춰 제재가 될까만, 방어책으로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예민해지고 있고 더 큰 죽음의 신호탄임을 감지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독일에서도 죽음의 진혼곡이 들려 왔다. 독일남부 바이에른 주 뮌헨 인근의 곡선 철로에서 통근 열차가 충돌했다. 사망자는 10여 명이지만 중상자가 많고 지역의 특성상 구조대의 접근이 어려워서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힘들어 사망자가 계속 늘 것이라고 타전한다.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불시의 사고를 방지하는 일은 힘든 일일까.

 설날에는 정신병 치료를 받고 있던 사십 대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것인 9살 난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한 소식도 들렸다. 불행한 자신처럼 살게 될까 봐 아예 미리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다양한 형태로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련의 부모들은 패륜의 최악이다.

 17년을 함께 산 반려견을 설 전날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개들의 수명은 인간의 수명과 같지 않아서 17년이면 거의 백수를 누렸다고 봐야 한다. 그런 만큼 가족으로 함께 나눈 애정도 크고 끈끈했다. 조막만 한 아이를 데려와서 키웠는데 2006년 월드컵 준결승 날, 노산으로 4마리 새끼를 낳았다. 세 마리는 분양하고 딸 한 마리와 함께 여생을 보내도록 뒀다.

 깨달음을 수시로 줬다. 말 못하는 개라지만 정말 말만 못했다. 먹는 것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식 먼저 먹기 전에는 밥에 입도 대지 않았다. 오래 살다 보니 치매가 왔고 오줌을 지렸다. 등도 굽고 시력도 갔다. 그런 중에도 딸이 배변을 하고 나면 항상 변함없이 뒤를 핥았다. 다른 개와는 달랐다.

 아무리 새끼라도 자기 먹을 것에 손을 대면 으르렁대고, 신경이 예민해지면 자식을 물어 죽이는 개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 아이는 달랐다. 늘 자식에게 양보하고 지켰다. 딸도 남달랐다. 철딱서니 없이 굴다가도 어미 개가 아픈 데가 있으면 밤을 새워가며 끝없이 핥아서 치료했다. 저것이 진실한 부모자식 간의 도리인가 했다. 개도 저럴진대 인간인 나는 뭘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각성하게 했다. 인간사 말도 안 되는 악연처럼 여겨지는 일이 생겨서 인륜 따위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에 개들을 떠올렸다. 개만큼도 못할 수야 없는 일이었다.

 반려견의 생애는 마치 인간의 삶을 4배속으로 돌려 본 것 같았다. 나고 자라고 자식을 낳고 늙고 떠났다. 살아가는 시간 동안 말없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 이 지구상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했다.

 반려견 한 마리를 보내면서 생긴 확신이 있다. 인간이나 개나 또 다른 생명체나 별반 차이가 없이 적용될 것 같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모두 동일하다.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 만나는 모든 상황들에 대해 갖는 애정, 그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이야말로 존재를 증명하는 최고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지진과 열차 충돌 사고로 불시에 죽음을 당한 분들에게 멀리서나마 애도를 표한다. 패륜아비의 손에 죽은 아이에게는 분노와 연민을 보낸다. 그리고 반려견에게는 한없는 애정의 마음을 보낸다. 같은 죽음인데 이렇게까지 대하는 마음이 다를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마음 밑바닥에 깔린 감정은 모두 사랑임을 다시 깨닫는다. 사랑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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