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0:00 (목)
사진 이야기
사진 이야기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6.02.03 2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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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편집위원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충동은 가히 무차별적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렌즈를 통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초현실적인 예술로도 승화시키기도 하고 그릇된 취미나 범죄로도 악용되기도 한다.

 사진은 현대문화의 메신저로, 예술로, 그리고 사회, 과학, 교육, 군사, 정보, 통신 등 다방면에 걸쳐 필수불가결한 문명의 이기로 활용돼고 있다. 결국 사진 없이는 어떤 분야도 정확한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진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언어라고 한다. 그것은 강렬한 형태의 시각언어(visual language)이다. 사진은 문자나 말과 달라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전달 기능을 갖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언어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진만큼 정확하고, 빠르고, 편리한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이해가 가능한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전 인류의 보편적인 언어가 됐다.

 어느 가정이나 사진을 모은 앨범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중요한 보물이 되고 있다. 태아의 움직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부터 백일, 돌잔치,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ㆍ고등학교, 대학, 취업, 결혼식까지 사진은 모든 것을 우리의 뇌리 속에 당시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것을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각종사회복지기관이나 단체의 행사나 회의에 대한 증빙서류에는 반드시 사진을 첨부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세상의 진리는 책 속에 문서에 존재한다고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됐다.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연구실 너머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니 어린이집에서 소풍 온 아이를 꽃 배경이 좋은 곳에 앉히고는 선생님이 사진을 찍으려 하고 아이는 싫다며 울고 있었다. 아이 앞에서 온갖 제스처로 아이를 달래면서 억지로 사진을 찍으려고 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애기 엄마가 배경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고 사진이 현장을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풍의 취지보다는 사진을 찍어 보여주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사진은 소통의 수단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은 어린 시절, 학창시절, 사진을 꺼내고서야 대화가 시작된다. 앨범 속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마주하는 소중한 추억에 기뻐서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너무 쉽게 세대를 넘나들 수 없어서 아주 천천히 사진 속 세상을 그려보기도 한다.

 사진에서 진실을 보았다. 사진의 힘과 마력을 느꼈다. 어떤 사진은 묵은지처럼 스스로 진한 맛과 향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사진과 그 사진 사이에는 강한 불꽃이 빛나고 있었다.

 휴대폰의 기능 중에 사진을 찍는 기능은 내가 정말로 어디를 갔고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찍은 사진을 갤러리에 저장하고 카톡으로 보내고 카카오스토리, 카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가족, 친구, 이웃이 볼 수 없던 곳에서 이뤄진 활동들을 알려주고 그들과 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국내외여행을 하면서 들리는 곳마다 전리품처럼 사진을 찍고 또 찍어서 모아온다. 각자의 시각으로 흔적으로 남기려고 한다. 고작 사진을 모으는 수단이 돼버린 여행에서 가장 많은 포즈가 완성된다. 현장에서는 본다. 충동을 느낀다. 멈춘다. 사진을 찍는다. 이동한다. 다시 반복된 사진 찍는 노동을 한다.

 나는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진하고 친해지고 싶고 늘 가까이 하고 싶어 언제 어디서든지 사진 찍을 준비는 하고 다닌다. 주로 꽃과 풍경사진을 열심히 찍지만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장소에서는 나를 증거도 하고 싶지만 매번 포기하고 만다. 나로 함께 배경의 격을 떨어드려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단체사진에 막 찍히려 할 때도 유달리 안절부절못한다. 사진을 찍으면 기가 빠진다는 옛어르신들 말처럼 겁이 나서가 아니라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이 잘 잡히지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태산같이 한다. 찍힌 사진을 보고는 항상 감탄을 한다. “와, 이 사람은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하면서 ‘사진을 잘 받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옆에 새카맣게 탄 나를 보고는 ‘사진이 잘 받지 않는다’고 위로한다. 실물보다 사진이 더 멋져 보이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이유로 아름다운 진실로 세상의 유산이 되고 있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해’에서 모홀리 나기는 ‘교훈적인 사진은 우리가 관찰력을 갖도록 해주고, 우리의 관찰력을 높여주기도 하며 우리의 시선을 심리적으로 변화시켜 준다’고 했다. 로버트 프랭크는 사진이 담아야 할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사진을 찍는 순간에 드러나는 인간성이라면서 자아의 배제를 요구했다. 사진이 지닌 최고의 사명은 인간에게 인간을 설명하는 것이다.

 오늘도 소중함을 기억하고 소유하고 싶다. 어디를 가든 소중한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 욕망을 셔터로 누르면서 충족하고 싶다. 사진이 보여주는 내용이 결국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좋은 모습으로 남겨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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