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싸우는 부자지간
영원히 싸우는 부자지간
  • 김혜란
  • 승인 2016.02.03 22:2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아버지와 아들이 대립하는 이야기는 인간 역사의 한 줄기다. 이방원은 이성계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반대로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게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과 세자, 권력자와 후계자는 서로를 죽이고 죽었다.

 신화에서는 아버지를 물리치고 자식을 잡아먹고 세상을 차지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딛고 넘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신들의 세상에는 위아래도 없고 부모자식 간의 위계도 없다며 웃어넘기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천륜이 있어서 유명 인물들의 부자지간 갈등은 뭇 대중의 눈과 입을 피해 갈 수 없다.

 현대사 정치판은 인류 역사의 축소판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객원교수가 아버지의 가신 그룹인 동교동계와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동교동계와 함께 탈당 후 국민의당에 간 정대철 전 상임고문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패륜정치’를 한다고 격노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남은 아들 정호준 의원에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비서실장을 제안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정 전 고문은 더불어민주당이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을 ‘정치 볼모’로 삼았고 자신의 집안에도 ‘악질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 부자(父子)가 정치적으로 각자 다른 길을 가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2년 대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핏줄이 아무리 중해도 생각이 변하면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정치판이다.

 사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정치나 특정 분야만 거론한 일도 아니다. 늘 그렇듯 아버지 세대는 아들 세대를 나약하고 의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대를 막론하고 아들이 아버지 마음에 들기는 아주 어렵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범접할 수 없는 큰 존재거나, 언젠가는 넘어서야 할 도전의 과제로 인식돼 왔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어린 날 불렀던 ‘어머님 마음’이란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의 노래다. 양주동 박사는 이 노래가사를 놀랍게도 정조 때 간행된 화산 용주사 판본의 ‘불설대보부모은중경’에 나오는 ‘십게찬송(十偈讚頌)’에 기초해서 썼다. 제목과 달리 꼭 어머니를 향해서만 부르는 노래는 아니다. 부모님을 향한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 중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하는 부분이 나온다. ‘진자리와 마른자리’를 갈아서 눕히는 일이, 그저 기저귀를 수도 없이 갈아주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집이라도 허술한 곳간 같은 곳이 많아서, 비가 오면 비가 새고 방구들에 불을 때도 젖은 곳이 많았다. 그래서 항상 자식을 마른자리에 눕히시고 당신들은 젖은 자리에 눕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풍경을 상상해보면 너무 절절하다.

 그렇다고 부모세대가 다 옳다는 뜻도 아니고 무조건 부모 말을 따르자거나 효성을 다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아들 세대가 더 나은 판단을 할 때도 많다. 다만, 아버지의 뜻과는 다르게 선택하는 자식은 반드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는 효가 기본가치인 우리 사회에서, 다른 길을 택한 아들의 마음을 자식 본인보다 더 깊게 헤아리자는 말이다. 아버지는 그 아버지에게서 받았고 아들에게도 주었고 받은 아들 역시 자신의 아들에게 줄 것이며 그 일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오랜 인간애정의 흐름만 살펴서 깨달아도,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억울해할 일도 아니고 격노할 일도 아닐 것이다.

 설 명절이 코앞이다. 부모자식 간에 오랜만에 만날 가정도 많을 것이다. 그동안 아버지와 혹은 자식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전화로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아도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많다. 명절을 기회 삼아 얼굴 마주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풀어 보자. 얼굴 마주 보는 힘만큼 큰 것도 없다. 마주보며 등도 쓰다듬으며 그동안 밀린 회포 풀고 서운한 일은 내가 먼저 이해할 마음의 준비를 무조건 해두자.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자지간이다. 인간의 역사이다.

 노래 한 곡 더 소개한다. 미국의 팝 가수 Ben Folds가 부른 노래다. ‘Still fighting it’이란 곡인데, 광고음악으로도 쓰여서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음성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안아주고 밥값도 내 주고 너는 내게 기쁨을 주지만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며 그러는 너와 나는 너무도 닮았구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haans 2016-03-11 11:26:36
still fighting it 이라는 가사에서 부자지간이 서로 싸운다는 해석은 왜곡이라고 봅니다.
노래의 주제는 부자지간의 갈등문제가 아니라 순수한 부성애입니다. 타동사 fight의 목적어가 it으로 따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서로 싸운다(fighting each other)와는 전혀 다른 의미일것입니다. 힘든 인생에서 성인인 아버지도, 아들도 '살아가기 위해' 세상의 뭔가와 투쟁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