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주류를 타려면 같은 양반이라도 무과보다는 문과시험을 봐야했습니다.
삼국, 고려시대까지 많은 관직에 오르던 김해김씨가 조선초반에는 문과에도 많이 오르지만
무오사화와 기묘사화에 연류면서 그 이후로 조선 주류에서 밀려나게 되지요.
보통 지방에서 후학 양성이나 문과 보다는 견제가 덜한 무과에 지원하게 된겁니다.
조선시대 기록만 봐도 김해김씨 인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문과 합격자가 적었던거 김해김씨가 조선시대의 주류 성씨는 아니였지요.
문과같은경우 주류 특정 성씨가 독덤적인게 많았습니다.
무과를 보면 김해김씨가 압도적으로 1위입니다.
그리고 생원/진사 시험도 김해김씨가 2번째로 많은 성씨입니다.
문과하나로 위글과같은 결과를 도출하시다니 놀랍네요.
삼국, 고려시대까지 많은 관직에 오르던 김해김씨가 조선초반에는 문과에도 많이 오르지만
무오사화와 기묘사화에 연류면서 그 이후로 조선 주류에서 밀려나게 되지요.
보통 지방에서 후학 양성이나 문과 보다는 견제가 덜한 무과에 지원하게 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