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합격자의 최연소자인 만13세의 이건창 외에 만14세에 합격한 자도 15명이다. 그리고 만85세의 최고령자 정순교 외에 70세 이상의 합격자도 18명이다. 그 중 80세 이상으로 합격한 자가 6명으로 김양근(金穰根84세), 김만수(金萬秀83세), 정해관(鄭海觀83세), 이주순(李周淳82세), 이준(李儁82세)이다. 이들은 고종 때 합격한 자들이다. 따라서 합격자를 많이 양산해 질도 떨어지고, 또한 보직을 받기 위해 매관매직이 대단했다.
선비들은 과거보러 가는 길을 함부로 선택하지 않았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고집했다. ‘문경(聞慶)’이란 지명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면 죽령과 추풍령은 넘기 싫어했다. 죽령을 넘으면 과거시험에서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부득이 추풍령 앞에 이르면 우회해 ‘괘방령(掛榜령)’을 넘었다. ‘괘방’이란 지명은 ‘합격자 명단을 게시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과거는 문과ㆍ무과ㆍ잡과로 나누었는데, 대다수 문과에 응시했다. 문과에 합격한 이는 약 1만 5천여 명, 생원과 진사과는 약 4만 7천여 명이다. 연평균 문과는 30명, 생원과 진사과는 100명 정도가 선발되는 꼴이다. 그 중 문과에 합격한 수를 살펴보면 서울(한성)은 3천969명, 강원도 148명(강릉75ㆍ원주73)명, 경기도 402명(개성82ㆍ광주107ㆍ수원68ㆍ양주81ㆍ여주64), 경상도 496명(경주52ㆍ상주119ㆍ안동154ㆍ영주110ㆍ예안61), 전라도 199명(남원81ㆍ나주64ㆍ전주54), 충청도 313명(공주80ㆍ청주101ㆍ충주132), 평안도 412명(안주60ㆍ정주235ㆍ평양117), 함경도 98명(함흥98)이다. 반면에 제주도는 합격자가 없다.
당시 문과 급제자 1만 4천615명을 분석하니, 인구 30위 안에 들어가는 성관(姓貫ㆍ성씨와 본관)과 과거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30대 성관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과거, 출세의 사다리’에 의하면, 각 성관의 문과급제율과 인구비율이 비례했다. 전주이씨, 안동권씨, 파평윤씨 등 문과 급제자의 순위 1~3위와 인구수 1-3위와 같았다. 이에 반해 인구 1위를 차지한 김해김씨의 급제자는 최하위이다. 이는 당시의 인구비중과는 달리 일제 강점기의 ‘위보(僞譜) 즉 가짜 족보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의 평균연령은 문과는 36세, 생원과와 진사과는 34세이다. 이 중 40세 이상이 40%를 차지하며, 50세 넘어서까지 시험에 매달린 사람들도 있었다. 11대 중종은 친히 시험장에 가서 직접문제를 냈다. 내용은 ‘이 시대에 요순시대 같은 이상적인 정치를 하려면 먼저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 또는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느냐’고 문제를 냈다.
과거시험은 사서삼경을 외우고, 시(詩)만 잘 짓는다고 합격하는 게 아니었다. 임금 앞에서 마지막 논술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이때 왕은 주로 국가현안에 대한 정책입안 능력을 평가했다. 요즘은 어떤가. 육법전서에 있는 법전을 달달 외우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 옛날의 과거제와 같이 고시응시생에게 출산절벽, 취업절벽, 희망절벽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좀 물어보아 정책입안에 이용하는 게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