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3:02 (화)
학부모님 재능 기부해주세요
학부모님 재능 기부해주세요
  • 김금옥
  • 승인 2015.12.23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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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파다닥 뛰는 듯 걸어 나오는 여학생의 모습이 한 마리 사슴 같았다. 멋진 걸음걸이로 무대 중앙에서 옷맵시를 뽐내며 섰다가 눈을 찡긋하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양어깨를 약간 과장해서 흔들며 무대를 들어와 옷을 한 자락을 걷어 안쪽까지 보여주며 폼을 잡는 여학생, 사분사분 걸어서 무대 뒤로 사라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학교 축제에서 열린 패션쇼 무대였다. 이번 패션쇼는 학부모의 재능 기부와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의 결과가 합쳐져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처음 시작은 학교시설을 활용한 학부모들의 평생교육이었다. 학부모 중에 재봉에 솜씨가 남다른 분이 계셔서 그 재능을 다른 학부모를 위해 기부해주기를 요청했다. 빈 교실에 재봉틀을 준비하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홈패션 반을 개설했던 것이다. 지원자들이 넘쳐났다. 학부모들은 옷을 만들 수 있는 자신을 스스로 기특해 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찢어진 교복이나 짧아진 치맛단을 고쳐주실 수 있냐며 고개를 들이밀면, 서로 고쳐주겠다며 즐거워하더니 아예 고정적으로 요일을 정해 교복수선의 날을 운영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학부모로부터 바느질을 시작하면서 우울증이 사라졌다며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순간, 학교생활이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도 홈패션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기부를 해 오신 학부모님이 이번에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수업은 주 1회 2시간씩 이루어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입을 열지 않아 두 마디 말을 시키기가 어렵던 아이가 얼굴이 환해져서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직선박기가 성공했어요.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후로 아이들은 베개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고, 옷도 만들었다. 몇몇 학생은 놀라운 집중력과 솜씨를 발휘했다. 그렇게 해서 학교 축제 때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만든 작품으로 패션쇼를 하기로 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그다지 연습도 없이 무대에 올렸는데, 아이들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패션쇼를 기획한 학부모 재능기부자가 학생들의 손을 잡고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패션쇼는 막을 내렸다.

 홈패션실로 찾아가 재능기부자 정혜주 학부모님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렸다. 학부모님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바느질 기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의 문도 열게 만든 것이다. 학생들은 친구들의 갈채를 받으며 화려한 조명 속을 당당하게 걸었던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상표로 세계의 패션시장을 공략하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재봉틀 몇 번 돌리게 하고 겨우 학교 축제무대에 한번 올렸다고, 너무 꿈이 크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교직에 몸담아 온 필자는 한마디 칭찬이 아이의 삶 전체를 바꾸는 일을 종종 목격했다. 하기야 학창시절의 즐거웠던 경험으로 끝나면 어떠랴. 취미로 바느질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돼도 좋고, 바느질을 통해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할 것이다.

 학교는 재봉 이외에도 학부모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 교육에 학부모들의 재능이 보태지면 기대 이상의 교육효과를 볼 수 있다. 별다른 재능도 없는데 무슨 교육기부를 할 수 있겠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부모는 생명을 잉태해 사랑으로 키운 사람들이다. 평생 음식을 만들어 먹여 생명들을 키웠고, 그 어려운 모국어를 가르쳤으며, 두 다리로 땅을 단단히 디딜 수 있도록 직립보행을 가르친 사람들이다. 부모는 지치지 않는 인내로 아이들을 키운 세상 최고의 교사이다.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하기로 마음먹는다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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