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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成殿(대성전)
大成殿(대성전)
  • 송종복
  • 승인 2015.12.23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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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大:대 - 크다 成:성 - 이루다 殿:전 - 큰집

 공자의 위패를 봉안·향사하는 건물을 대성전이라 한다. 이와 반대로 불상을 봉안한 전각을 대웅전이라 한다. 조선 국왕은 새해가 되면 대성전에서 공자에게 절을 올린다.

 원(元)나라의 무종은 공자의 시호를 대성(大成)이라 했고, 송나라 휘종은 벽옹문선왕전(?雍文宣王殿)을 대성전이라 했다. 그리고 1530년(중종 25)에는 공자의 소상(塑像)을 철거하고 목주(木主)로 대용했다. 현존하는 공자의 위판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가 환안(還安)한 역사가 있다. 문묘는 문선왕묘(文宣王廟)의 약자이며, 이를 문묘·공자묘·선사묘(先師廟)·성묘(聖廟)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공자(孔子)를 모시게 된 동기는 신라 성덕왕 16년에 당(唐)의 조정에 갔던 왕자 김수충이 공자·10철인·72제자의 화상을 가져와 국학에 안치시켰다. 그 후 고려 성종 2년에 임노성이 송(宋)에서 가져온 <태묘당도(太廟堂圖)>, <문성왕묘도(文聖王廟圖)>, <72현찬기(七二賢贊記)> 등을 국자감에 안치시키고, 충렬왕 때 안향이 대성전(大成殿)을 신축한 것이 공자를 모시는 계기가 됐다.

 조선 태조 7년에 한양에 문묘를 신축했다. 연산군 때 수난을 겪다가 중종(中宗) 때 복구했다. 이 문묘종사(文廟從祀)에 학파, 당파, 정세에 따라 큰 분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전통교육을 전수하며, 전국적으로 많은 교육과 향사를 지내 왔다. 성균관(1개)은 서울에 설치한 고등교육을, 향교(231개)는 각 고을에 설치한 중등교육을 시행했다. 이들 교육기관에는 대성전이 설치돼 있다. 새해가 되면 국왕은 대성전에 행차해 공자(孔子)에게 정중히 절을 올리는 성전이자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필자가 제남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때 우리가 숭모하는 공자의 무덤을 찾았다. 무덤의 중앙에는 거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심양의 청(淸) 태종 무덤에는 중앙에 잡목 하나 있고, 봉분은 시멘트로 단장한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1974년도에 문화혁명으로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이 일어나 공부, 공묘, 공림을 훼손한 적도 있었다. 이로 보면 중국은 공자에 대한 숭모가 우리의 반의반도 따라오지 못하고 있음을 너무나 놀랐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은 서원과 향교를 향호유림의 소굴로 취급해 많이 철폐한 적도 있었다. 그 후 서양교육의 미흡한 윤리를 이곳에서 대체하고 있었으나 정부의 무관심으로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다. 이에 막강한 강사진과 전문교육을 진흥시켜 옛 명성을 되찾기 바라며 정부도 많은 지원을 해 고유의 미풍양속을 전수하는 대성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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