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0:33 (토)
이방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이방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 박춘국 기자
  • 승인 2015.12.17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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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편집부국장
 태양이 이글거렸던 지난여름 어느 날 필자는 고향인 거제시를 찾았다. 아스팔트 표면이 녹아가는 대우조선해양 주변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필자의 승용차를 추돌하는 이가 있었다.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승용차를 받은 용감한 운전자는 이제 큰일 났다. 주차 브레이크를 당긴 뒤 추돌차량의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Sorry.”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젊은 외국인과 마주한 필자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보험회사에 전화할까. 적당히 합의를 봐서 수리비를 받고 돌려보낼까’라는 생각 등이 빛의 속도로 돌아가던 필자의 뇌리에 ‘국격’, ‘국가 이미지’ 등의 단어가 스쳐 갔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필자의 발목에는 ‘언론사 간부’라는 사회적 신분이 휘감고 있었다.

 “That’s OK. No problem.”

 “Thank you, Sorry.”를 반복하는 서양 청년의 얼굴은 걱정에서 미소로 변했다.

 자동차 뒤범퍼가 긁힌 기분을 뒤로하고 펼쳐지는 아름다운 거제의 풍광은 문득 필자를 1970년대로 끌고 갔다.

 70년대 우리의 많은 부모 세대들은 가족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미국 등지로 취업했다. ‘이주노동자’로 불렸던 이들이 열사의 사막과 독일의 탄광 등지에서 흘린 땀들은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든 초석이 됐다.

 필자의 고향 마을에도 몇 분의 어르신들이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고 돌아오셨다. 이들의 후손들인 필자의 친구와 선후배들은 지금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주노동자로 힘들게 일하신 어르신들의 은혜라 여겨진다.

 후손들의 존경과 고마움의 대상인 이들 어르신이 사우디와 독일, 미국 등지로 일하러 가서 핍박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은 없었다. 그래서 과거 우리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준 이들 나라에 대해 우리는 호감을 느끼고 있다.

 40여 년 전 우리의 어르신들에게 돈을 벌 직장을 제공해준 나라에 고마운 마음을 가진 지금의 대한민국은 힘든 일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맡기는 나라가 됐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건설현장과 공장 등지에서 일하는 모습은 이제는 평범할 일상의 모습이 됐다.

 짧은 시간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의 노동현장에 합류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험한 일을 꺼린 결과로 풀이된다. 부모 세대들의 노고는 우리를 고학력자로 만들었고, 우리는 일 하기 쉬우면서 임금이 높은 직장에 자리를 잡아 왔다.

 우리를 대신해 고된 일을 해주려고 먼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우리는 부모세대들이 타국에서 받았던 따듯한 마음으로 대해줘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어제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가 발표한 ‘지역 이주노동자 노동생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경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11.1%가 한국 입국 시 ‘뇌물을 줬다’고 응답했다. 이주민센터는 “입국 브로커에게 주는 비용 때문에 과다한 입국비용이 발생했으며, 이 비용이 지속해서 증가할 경우 불법체류자도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의 평균 입국비용은 1인당 234만 원으로 정부가 송출국과 협의로 관리하는 평균 입국비용 73만 원보다 3.2배나 많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이들의 10.9%는 직장에서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가해자는 ‘한국인 노동자’ (31.4%), ‘직장 관리자’ (35.3%), ‘사장’ (27.5%), ‘직장 내 외국인 근로자’ (3.9%) 순이었단다.

 이쯤 되면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한국을 ‘따뜻한 나라’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 이들의 후손들은 우리를 향해 호감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가 수출한 제품을 사주지도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손님 같은 이들에게 입국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소통도 어려운 그들을 향해 폭행을 가하는 이들이 우리를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이들을 통해 우리 모두를 평가하고 바라본다. 일부의 한국인으로 국가 전체의 이미지가 떨어지는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한 해법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갈수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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