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기도 신고도 112
자살기도 신고도 112
  • 김병기
  • 승인 2015.12.1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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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112종합상황실 경위
 “아파트 10층 베란다에 남자가 옷을 벗고 피를 많이 흘리며 살려 달라 고함을 치고 있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저녁 8시 30분. 즉시 관할 지구대 순찰차에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이어 순찰 중인 형사기동 차량과 다목적 순찰 차량(일명 번개)에도 지원지령이 내려졌다. 신고자는 9층에 사는 이웃 주민으로 고함 소리에 놀라 위를 쳐다보니 팬티만 걸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살려달라 외침에 급히 112를 찾았다 한다. 맨 먼저 현장에 도착한 지구대 이경사는 아파트 현관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기 위해 119 요청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2신고 된 1천877만 8천105건을 분석해 보니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협이나 현장조치가 필요한 긴급출동 신고는 239만 1천396건(12.7%)에 불과하고, 긴급하지 않아도 출동한 신고는 799만 6천36건(42.6%)이었고 굳이 출동하지 않아도 될 상담성 민원신고가 839만 673건(44.7%)이었다 한다. 앞서 경찰에서는 112 시스템을 개편해 “집 문이 안 열린다” 등 “민원신고”에 대해 출동하지 않기로 했지만, 경찰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이것도 못해 주냐 등 대국민 서비스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이나 민원을 해소키 위해 긴급신고가 아니라도 출동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앉아 막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참에 아파트 단지에 진입한 순찰차에 놀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흥분한 10층 베란다 남자는 경찰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뛰어내릴 것 같아 주민 분산과 동시에 119 출동자와 협의 화단에 있는 나무를 제거하고 에어매트를 설치했다. 다른 한편으론 아파트관리사무소에 의뢰 남자의 어머니와 통화를 시도 현관문 비밀번호를 확보했다. 물론 옆 호실 베란다에 들어선 경찰관은 남자에게 말을 걸면서 흥분된 상태를 진정시켰고, 이경사가 현관문을 열자 남자는 베란다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는 것을 몸을 던져 극적으로 제압하게 됐다.

 혹자는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리 됐는가 반문한다.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옛날에 비해 살기는 좋아졌는지 몰라도 나만 아는 각박한 현실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이웃을 잃고 가족도 잃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버티기란 강심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어렵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27세 남자는 어머니와 생활해 오다 혼자 아파트에 남게 되자 외로움과 두려움에 집안 물건을 닥치는 대로 파손하다 상처를 입게 됐고, 급기야 베란다로 나가 자살기도 소동을 벌이게 된 것으로 보였다.

 이튿날 저녁 11시. 아내와 늦은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른거리는 불빛에 이끌려 집 근처 공터를 찾았다. 희미한 손전등 아래 쪼그려 앉은 아가씨가 길고양이들이 먹을 물과 사료를 챙기고 있었다. 아가씨는 허기진 고양이를 위해 공터 몇 군데를 찾는다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물질은 풍부해졌는지 몰라도 내면은 피폐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혹시라도 내 주위에 대화를 원하는 이는 없는지 살펴보자. 소중한 이웃을, 내 가족을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다. 물론 자살기도 신고도 11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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