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8:39 (목)
할머니가 꾸민 크리스마스트리
할머니가 꾸민 크리스마스트리
  • 김은아
  • 승인 2015.12.14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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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
 “선상님, 내 그림 색깔이 좀 어떻노?”, “아이고, 어머니, 예뻐요. 새색씨 앞치마 같이 예쁘게도 칠하셨네.”

 일요일 오전, 성원한글학교 교실이 할머니들 그림들로 어수선하지만 간만에 활기가 넘쳐난다. 그림들을 가위로 오리면서 한참을 실갱이를 하던 한 분이 “아이고 가새도 이제 내를 이기물라카네”하시면 기분 좋게 웃으신다. 동그랗고 네모나게 오려진 그림과 사진들에 동그란 구멍을 내고 침침한 눈으로 실을 꿰고 있다. 줄을 길게 할까, 짧게 할까도 고민이다. 그러면서 벌이는 기분 좋은 티격거림은 10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학교생활을 해 보는 느낌을 가지는 듯 흥분된 분위기가 12월 차가운 날씨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두 시간이 넘는 사전 작업을 마치고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들고 동상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동상시장에서 진행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한 학기 내내 한글수업 시간 외에 준비한 그림과 작품들을 트리에 걸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자기 작품을 앞쪽에 내걸기 위해 소리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가끔 바람에 뒤집히는 그림들을 고정시키기 위해 다름 애쓰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장해 보이셨다. 추운 날씨에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트리 만들기에 온 정성을 다 쏟아 부었다. 골목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허리 구부정한 어르신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신기하듯 가까이 다가와 보더니 감탄하고 박수를 치며 어르신들을 응원했다. 그 모습에 더 흥이 난 할머니들은 어스럼 해질녘까지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한 시간이 넘는 트리 작성이 끝이 나자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스스로 자신들의 작품에 감탄하고 대견해 하며 사진을 찍어 달라 했다. 각자 자신의 작품에 멋진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고 자식들의 폰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한 분은 가까이 사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시장을 오게 되면 꼭 엄마의 트리를 보라고 말하며 활짝 웃으셨다.

 근처 골목으로 발걸음 옮겨 칼국수 한 그릇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당면이 얹어진 칼국수 한 그릇에 얼었던 마음과 몸을 녹였다. 평소보다 맛나게 식사를 하시던 할머니는 평소보다 유난히 말이 많았다. 처음 한글을 배우게 된 이야기부터 살아왔던 이야기들이 칼국수의 긴 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게 시작했다. 한참을 “하하, 호호” 웃으며 짧은 저녁시간을 보냈다.

 26년째 이어오는 김해여성복지회관의 할머니 한글학교인 성원학교는 비문해자들에게 한글교육뿐 아니라 간단한 영어, 한자, 은행, 관공서, 고속터미널, 열차 이용 등, 실용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활의 불편한 경험을 바탕 삼아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어르신들의 수준별 분류 학습이 여러 가지 재정문제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4명의 봉사자 선생님들이 항상 붙어 부족한 점을 채우고는 있지만 집중교육을 위한 분반의 필요성이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께서 김해시 평생교육축제 글쓰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오는 등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시장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미용실 앞에 세워진 할머니 트리에 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할머니들의 얼굴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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