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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설계자’들
  • 김혜란
  • 승인 2015.12.09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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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건축경기가 바닥을 친 지는 오래다.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내뱉는 한숨 때문에 짓던 건물의 기초공사를 다시 해야 할 판이라고 자조한다. 건축설계로 밥 먹는 사람들은 스스로 3D업종 종사자라고 한다. 인정해야 할 판이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나온 건축설계사무소 소장 장동건과 그 친구들은 딴 나라 드라마를 찍은 것이 분명하다.

 대신 다른 곳에서 ‘설계자’가 인기다. ‘설계자’란 단어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에 나온 김언수의 소설 ‘설계자들’에서다. 암살자에게 지령을 내려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사람들로 나온다.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고 정보를 수집하고 완벽한 계획을 짜서 암살자에게 그 지시를 이행하게 해 사람을 죽이게 하는 일. 이들이 만드는 살인 시나리오가 ‘설계’이고, 이러한 설계를 짜는 사람들은 ‘설계자’가 된다는 설정이었다.

 사회에서 일어난 조금은 석연치 않은 죽음 중 상당수가 이러한 설계자와 암살자가 개입돼 있다는 가정을 두고 시작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누구도 앉을 수 없는 그 자리, ‘설계자’의 자리.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엇에 의한 지시로 사람의 생명을 뺏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설계자’가 없다는 소설 속 결론은 순진한 결론이다. 우리 사회 속 ‘설계자’로 불리는 이들은 분명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IS 소속으로 세계를 테러공포에 떨게 한 파리 테러 ‘설계자’ 압델하미드 아바우드는 닷새 만에 총알투성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바우드는 27살의 청년인데, 시리아에서 유럽 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여러 건의 테러를 설계하고 지휘했다고 한다.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의 유태인 박물관 테러, 지난 8월 미수에 그친 파리행 고속 열차 총격 테러, 그리고 파리 연쇄테러까지 모두 그가 기획하고 설계했다고 했다. 언론을 통해서 파리테러에 관한 보도를 만날 때마다 ‘설계자’ 아바우드란 단어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영화나 TV 속 흉악한 범죄 이야기 안에는 반드시 ‘설계자’가 있다. 영화 ‘감시자들’이나 ‘내부자들’ 등 연쇄살인을 비롯해서 경제사범이나 주가조작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야기에도 그 작전을 기획하고 만든 사람을 ‘설계자’로 부른다.

 우리 현실에서도 크고 작은 사기사건이나 경제사범, 흉악사범검거 뒤에는 ‘설계자’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설계자’란 단어가 좀 다르게 가지를 치기도 한다. 정치 지도자들의 화합할 수 없는 힘든 형국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정치판이 흘러가도록 뒤에서 상황을 기획한 ‘설계자’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종편 TV에서는 ‘설계자’로 지목된 정치인 이름까지 거론한다.

 요즘 가수활동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여자가수 역시, 최근 낸 음원이나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삶의 진로를 두고 먼저 ‘설계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예 수능시험을 보지 않고 특례입학 자체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대학을 가더라도 열심히 다니지 못할 거고 고마운 줄도 몰랐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두고도 ‘설계자’의 얼굴을 차차 드러냈다. 소속사 전략대로 움직이던 아이는 듀엣하기 좋은 가수였다가, 삼촌들의 감수성을 맞추다가, 새 앨범에서는 뚜렷이 자기 소리를 내기에 이른다. 모든 곡을 작사했고 그중 세 곡은 작곡했다. 연애 또한 라디오에서 처음 만났고 첫눈에 반해서 긴 만남을 기획했노라고 인터뷰한다. 연애 또한 스스로 기획하고 유통시킨 ‘설계자’였다. 물론, 배후에 모든 설계를 담당한 또 다른 ‘설계자’가 있음도 짐작 가능하다.

 누군가가 의뢰한 작품을 쓰기만 하는 데서 벗어나서 작품을 기획하고 창작하며 마케팅과 유통의 전 과정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는 스토리 디자이너, 즉 스토리 ‘설계자’가 돼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작가군들도 생겨나고 있다.

 경영분야에서는 이미 한참 전부터 혁신과 창조의 한 방법으로 ‘디자인 씽킹’이나 ‘씽킹 디자이너’라는 용어를 써 왔다. 생각을 설계하는 자, ‘설계자’, ‘디자이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기획하고 설계해서 직장과 연애와 다른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일은 훌륭한 일이다. ‘설계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설계자’를 떠올리는 순간 부정적이거나 영악함도 함께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설계한 삶을 완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설계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악하거나 부정적인 해법을 동원해도 문제없다는 식의 께름칙한 느낌을 ‘설계자’란 단어가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께름칙한 것은 안 좋은 이미지 따위 ‘개나 줘버리라’면서 진심으로 ‘설계자’가 되고 싶어하는 수많은 무의식 속 꿈틀대는 욕망이다. 빠르게 퍼지는 ‘설계자’ 용어의 뒷면을 감지하는 촉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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