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5:40 (화)
아침밥상서 사라진 어머니들
아침밥상서 사라진 어머니들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5.12.06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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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아침밥상은 저녁과 달리 온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 자리다. 그래서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아침밥상은 에너지이자 하루를 시작하는 가족들만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앉아 하루의 당부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자 나에게 든든한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며 활기찬 하루를 보낼 활력을 재충전하는 공간이다. 내 어릴 적 아침밥상은 아버지가 앉으시기 전에 옷단장을 하고 밥상자리에 앉아 미리 대기를 해야 했다. 그것은 나만이 아닌 온 가족의 정언명령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아침밥상은 그 자체가 교육이었고 아버지의 향기와 어머니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였던 때로 기억되는 어느날 아침, 어머니가 옥수수 죽을 아침밥상에 올리셨다. 어머니는 보릿고개로 쌀값이며 보리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당분간은 옥수수 죽으로 끼니를 때우자고 하셨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라며 미안해하셨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죽만 드셨다. 가족을 책임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간단치 않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깨달은 기억이 있다. 그때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은 화석화돼 지금도 생생하다.

 내 어릴 적 아침밥상의 모습을 지금의 가족들에게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아침밥상 실태는 실로 충격적이다. 한 선생님이 얼마 전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등교하는 학생을 파악한 결과를 전해줬다. 3개 반을 조사했더니 한 학급 40명 중 어느 반은 13명, 다른 반은 15, 20명이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했단다. ‘왜’ 라고 물었더니 거의 대부분이 ‘주무신다’고 했단다. 그것도 오전 늦게까지. ‘아버지 얼굴은 보니’하고 물었더니 무슨 가당치도 않은 질문을 하느냐는 식으로 되쳐다 보더라는 것이다. ‘왜 늦게까지 주무시니’라고 물었더니 자기들 끼리만 수군거릴 뿐 아무도 말을 하지 않더란다. 차마 부끄러워 말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쇠도 녹일 정도로 식욕이 왕성할 청소년기에 온갖 인공첨가물이 들어간 빵으로 끼니를 때워가지고는 우리의 청소년들의 심신이 건강할 리 없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앉지는 못해도 제 새끼 아침밥도 먹이지 않는 엄마가 많게는 절반이나 된다니… 말문이 막힌다. 어머니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마당에 아침밥을 먹을 리는 없다. 학생들이 아침부터 학교 매점에서 빵을 사 먹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점심때의 자녀 동반 외식은 이런 부모의 일종의 속죄의식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라.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애 얼굴도 보지 않는 엄마가 남편 얼굴을 볼 리는 없다) 제 새끼에게는 돈을 줘 빵을 사먹게 하는 엄마, 마누라 얼굴 제 새끼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출근하는 남편, 그런 엄마 아빠를 부끄러워 하는 자식, 하루 종일 학교에 있으면서 학교 급식소 아주머니와 매점 아주머니에게서 어머니의 역할을 보는 자녀들, 속죄하듯 휴일에 가족 외식 한번 하고는 나는 행복해 하며 위선을 떠는 가족. 어쩌면 ‘남들도 다 그런데 뭐’하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족 모습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높은 이혼율, 낮은 출산율 이면에는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모가 늙었을 때 장성한 자녀가 ‘내 성장기에 빵 사먹어라고 돈을 준 것외 부모님이 한 것이 뭐냐’고 물으면 어떤 얼굴을 할 지 짐작키 어렵지 않다. 지금의 중장년들은 흔히들 노후에 자녀가 보살펴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대할 면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침밥상에서 사라진 어머니와 아버지들, 지금이라도 아침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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