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가 왜곡된 사연은?
우리 역사가 왜곡된 사연은?
  • 송종복
  • 승인 2015.11.2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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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우리 역사는 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됐는가? 올바른 역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왜곡과 곡절이 많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5천년 역사에 중국과 일본 등 외적의 침략으로 수많은 사서(史書)가 불타 버렸고 그들의 왜곡된 역사기록으로 올바른 역사의 맥과 뿌리가 단절됐다. 따라서 우리 역사는 삼독에 걸렸다. 사대주의 사관에 젖은 중독(中毒), 식민주의 사관에 빠진 왜독(倭毒), 실증주의 사관(랑케사학)에 물던 양독(洋毒) 때문에 우리 역사는 왜곡됐다.

 단재 신채호는 ‘우리 역사가 왜곡된 것은 중국ㆍ일본에 의해서 말살된 원인도 있지만, 우리 시가들도 많이 왜곡시켰다’고 했다. 즉,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 김견명(일연)의 ‘삼국유사’, 조선시대 서거정의 ‘동국통감’에서 왜곡이 많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고려 인종(1135년)때 묘청의 자주적인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하자 사대주의 학자들이 집권하면서, 중국의 정신적 속국으로 전락했다.

 첫째로 중독이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조선역사상 일천년래의 대사건’이다. 그 사건은 사대주의자 김부식이 집권하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자주사상이 사대적 유교사상으로 바꿨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우리의 종교, 학술, 정치, 풍속이 시대주의의 노예가 됐다. 조선왕조는 유교의 영향 아래에 중국을 천자를 받들고 중국인을 상전으로 모셨다. 따라서 우리 역사는 중국 사관에 의해 왜곡되고 부정됐다는 것이다.

 둘째로 왜독이다. 한말에 일본에게 피맺힌 35년간 지배를 받았다. 일제는 총독부 산하에 ‘취조국’을 두고 1910.11-1911.12월까지 조선서적 51종 20여 만 권을 약탈해 소각했다. 당시 경복궁에서는 책 태우는 냄새가 3일 동안이나 났다고 한다. 1922년에는 ‘조선사편수회’를 두어 ‘조선사’를 편찬했다. 이때 일인 금서룡(今西龍)은 ‘단군고(檀君考)’에 단군을 ‘신화’라고 해 ‘단군신화’란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유포하고는 우리를 곰의 자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조선사 편찬에 이병도, 신석호, 최남선, 권중현, 박용구, 이완용, 박영효 등이 참가했다. 1919년 3월 독립운동 뒤에 사이토 마코토(제등실: 齊藤實) 총독은 ‘교육시책’에서 조선인은 자신의 역사를 모르게 해, 조상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추어내어 그 후손들에게 가르치라. 그러면 조상을 무시하고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된다. 그때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반일본인이 된다고 했다.

 셋째는 양독이다. 근래에 서양에 유학 갔다 온 역사학자들은 랑케의 실증주의 사학을 인용했다. 즉 ‘유물이 안 나오면 안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주 무대는 중국이다. 중국인이 발견한 고고학 자료들만 해도 무수하게 많은데, 그걸 갖다 써야 되는데 하나도 없다. 이런 방법은 짧은 역사는 가능한 짓이나, 5천년이 역사를 가진 우리는 이런 증명은 맞지 않다. 또 미군정시대의 교육은 서구문화의 우월성을 주입하며, 반면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비합리적, 미신적, 비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배척했다.

 역사란 철학, 인류학, 언어학, 서지학, 연대학, 고고학 등의 복합학문이다. 역사적 사실은 여려가지 방법론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학은 19세기에 잠깐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실증주의 역사서술을 고집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삼독(三毒)의 왜곡과 곡절을 거치면서 우리정신은 극심하게 오염됐고, 수많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젖게 됐다. 이런 역사를 이번에 국정교과서를 서술하면서 반만년 찬란한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자랑하고, 자긍심과 애국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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