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9:28 (화)
영웅 YS에서 뭘 배울 것인가
영웅 YS에서 뭘 배울 것인가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5.11.22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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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한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온 몸을 던졌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고인은 한국현대사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한국 정치의 거목이었다. 만 25세 최연소 국회의원에 9선 의원이었던 그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정치인이었다. 자유당을 탈당해 야당인 민주당의 투사로 변신했고 박정희 정권시절에는 민주세력의 구심점으로 민주주의 최전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싸웠다. 국회에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의원직 제명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서울의 봄’을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양 김의 분열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실책을 하기도 했지만 고인은 신군부에 의한 가택연금에 23일간의 단식 사투로 맞서고 6.10 민주항쟁을 주도하며 이땅에 다시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주역이었다. 2차 양 김 분열로 신군부 정권이 연장되는 실망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기도 했지만 고인은 3당 합당, 이어진 당내 투쟁 끝에 30여 년간 끌어온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탄생시키고야만 저돌적인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개혁의 선봉에 섰다. 일본도 실패한 금융실명제를 과감히 도입해 부패를 척결하며 투명한 경제질서를 놓는 초석을 다졌고 군부 내 거대 사조직인 하나회와 율곡비리를 척결해 군개혁을 이뤄냈다. 역사바로세우기로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고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헌 과단성 넘치는 결기에 찬 인물이었다. 일본이 자기 비용으로 총독부 건물을 가져가겠다고 하자 “폭파해 버리라”고 한 말은 지금도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그도 아들의 비리와 IMF 국가부도사태로 말년에는 혹독한 평가를 받고 쓸쓸한 퇴임 후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IMF 국가부도사태의 책임에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떤 과(過)에도 불구하고 그가 위대한 민주주의의 영웅이자 불세출의 개혁가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고인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으며 이를 몸으로 실천한 인물이었다. 독재에 타협하지 않으며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적과도 웃으며 대화를 할 수 있었던 배포가 큰 정치인이었다.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신진정치인을 수혈하는데도 탁월한 감각을 보였다. YS키즈로 정치에 입문해 거물이 된 인물은 수 없이 많다. 김수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정의화 현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이회창 전 총리, 이인제, 이재오 의원, 홍준표 경남지사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고인이 발탁하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YS와 같은 정치인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대의 시대상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한 지역의 맹주로서 정치적 적까지도 감동케 하며 때로는 무도한 듯싶은 결정도 서슴없이 해버리는 정치인이 나오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 고인이 정치하던 시절에는 국민들이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때는 목숨을 위협하는 세력과도 대화를 나눴는데 지금의 현실은 대화는 없고 상대를 향한 삿대질만 난무한다. 고인을 통해 거물이 된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가 우리정치에 남긴 긍정적 자산을 매몰시켜버리는 데 오늘 우리의 정치현실이 익숙한 것은 IMF 국가부도사태의 책임을 고인에게만 돌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인에 대한 냉철한 재평가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DJ가 가고 YS가 감으로써 우리 현대사에 짙은 영향을 줬던 양 김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두 거물을 재조명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정치는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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