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34 (토)
족보(族譜)정치라니…
족보(族譜)정치라니…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5.11.15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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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영남권의 선거 풍속도 중 친박논쟁은 항시 논란이었다. 이는 당내 경선이 본선과 다를 바 없는 지역 정서에 편승, 국회의원과 광역 및 기초단체장 선거 등 어떤 선거든지 가릴 것도 없이 박근혜 마케팅을 서로 이용하려 했고 이용한 게 사실이었다. 물론, 친박이란 호소에도 꼬꾸라진 사례도 있지만 선거 풍속도 중의 대세였다.

 현재 출마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다시 친박의 가면을 쓰고 영남권으로 몰려들고 있다. 출마자들은 제각각 직간접적인 친분을 내세우는 등 박근혜 마케팅에 혈안인 것은 영남권에서의 콘크리트 지지세에 있다. 이를 이용, 도내 기초단체장 재직 때 MB정부로부터 장관직을 제의받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지만 발 빠른 처세술로 친박계에 승차한 A씨, 친박에서→MB→친박으로 돌고 돌아 회귀한 B단체장, 공공기관의 임원 C씨 등은 총선출마를 기성 사실화한 상태다. 그 친박이 이젠 진박, 가박논쟁으로 진화, 야권에서는 족보정치에 빠져있다는 지적이고 ‘친박’에서 파생된 신조어를 집대성한 ‘친박용어사전 전면개정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선보일 정도다.

 친박에서 파생된 ‘박들’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한 이후 ‘진박’과 ‘가박’ 논란이 여권을 휩쓸고 있다. ‘친박용어사전 전면개정판’에서 가장 주목받는 용어는 단연 △진박(진짜 친박) △가박(가짜 친박), 용박(박근혜 대통령 이용)이다.

 아무튼, 박 대통령의 측근을 의미하는 ‘친박’에서 파생된 박들에게는 하나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분류가 생겼고 나름의 사연이 담겨 있다. 친박은 △원박(원조 친박) △강박(강성 친박) △신박(신 친박) △옹박(박근혜 옹위부대) △복박(돌아온 친박) △범박(범 친박) △신박(새로운 친박) 등으로 분류된다. 친박계에 속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용어도 등장했다. △홀박(홀대받는 친박) △곁박(곁불 쬐는 친박) △울박(울고 싶은 친박) △수박(수틀린 친박) 등은 글자 그대로 홀대접을 받으며 곁불이나 쬐고 있고, 수가 틀린 것 같아 울고 싶은 인물들을 말한다. 이탈한 탈박, 잘린 짤박 등 한때는 친박이었지만 궤도에서 벗어난 이들도 있다. △탈박(이탈한 친박) △쫓박(쫓겨난 친박) △짤박(잘린 친박) △멀박(멀어진 친박) 등 이 같이 박의 다양화에 따라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놀이’(?)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오죽하면 박씨 성을 가진 현직 국회의원의 한 측근은 진짜 박인데도 친박이라며 들이미는 탓에 화가 보통 난 게 아니란 것을 전할 정도로 족보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족보(族譜)정치에 물든 현 상황을 빗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진박ㆍ가박 자가진단법’이라는 게시물까지 등장했다. 자가 진단법은 1, 5ㆍ16은 쿠데타이다. 2, 유신은 구국의 결단이다. 3, 국정교과서 반드시 해야 한다. 4, 박 대통령의 연설을 번역기가 없어도 7할 이상 이해한다는 등 20개 문장 가운데 5개 이상 해당되면 그 의원은 가짜 친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 중 이 정부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고,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모두가 친박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의원도 있다. 하지만 친박의 울타리 안에 있는 의원들은 배박, 탈박, 비박 등의 꼬리표가 붙은 이들에게 ‘진박’ 공모전 응시 자격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는 여권 후보 일부는 ‘박심’(朴心)을 파고들기에 바쁘다. 이는 박 대통령의 영남권 지지도가 항상 40%를 웃돌고 50%를 넘나들기도 한 것에 있다. 내년 총선 때까지 높은 지지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친박 타령인 ‘박근혜 마케팅’에 주력하는 것이다.

 물론 ‘나의 이름 앞에 다른 성씨를 붙이지 말아 주세요’라며 블로그에 글을 올려 눈길을 끈 의원도 있다. 또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국민들께서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YS, DJ 때 상도동계, 동교동계도 아니고 무슨 일입니까. 국민들한테 너무나 부끄럽고 국민들이 뭐라고 그럴까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말하는 등 직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원박(원조 친박)에서 옹박(옹위 부대)까지 친박계의 족보는 현재 8대까지 세분화될 정도다. ‘친박 감별 용어’까지 난무하는 데는 박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방식과 그에 편승, 이득을 노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임기 반환점을 돌고 몇 달이 흘렀다지만 눈 밖에 나거나 찍히면 살아남기 힘든 분위기의 스멀거림도 한몫 한다는 게 여권의 분위기다. 실제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사태 후 의원성향을 규정하는 흐름을 타고 총선이 다가올수록 ‘진박’, ‘가박’ 논쟁은 더 가열될 것이 뻔하다. 마키아벨리는 ‘존경’을 받을 수 없다면 ‘공포’로 통치하라고 말했지만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는 국민의 여망이겠지만 진박(眞朴) 가박(假朴)을 가려달라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도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眞實)한 사람이란 점에서 족보정치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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