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9:36 (토)
천주교 신앙의 영적 고향 성지(밀양 하남읍 소재) 재조명
천주교 신앙의 영적 고향 성지(밀양 하남읍 소재) 재조명
  • 장세권 기자
  • 승인 2015.11.12 2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례언덕 성역화 추진 마산교구, 내년 성당 건축
부속건물ㆍ순교자 묘 조성 녹는 소금 운동 수익금 기부
▲ 명례성당은 1897년 본당이 됐다가(사제 상주) 1903년부터 마산 본당이 관할하는 공소가 됐다가 1935년부터는 진영 본당의 공소가 됐다.
 천주교마산교구는 2011년 이제민 신부를 명례성지 담당신부로 임명하고 명례 성당과 순교자의 생가 터가 위치한 명례언덕을 성역화하고 있다.

 2014년에 명례성지 조성을 위한 설계를 이로재(대표 승효상)에 의뢰하고 계약을 맺었으며 복자 신석복 순교자 순교 150년이 되는 2016년에 일차적으로 기념 성당을 건축할 계획이다.

 천주교 신자들의 영적 고향인 명례 성지는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은 영남지방을 통틀어 네 번째 본당이자 경남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본당(1897년)이 있는 곳으로, 순교자 신석복(申錫福) 마르코(1828-1866년)가 출생한 곳이자(명례리 1209번지),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 방인 사제이자 한국 땅에서 최초로 서품된 강성삼 신부(1866-1903년)가 초대 본당신부로 사목(목회)하다 돌아가신 곳이다.

 1828년 밀양 명례리 1209번지에서 출생한 신석복 마르코는 소금과 누룩 장수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진해 웅천 장에서 돌아오다가 체포돼 대구 감영으로 끌려가 순교했다. 1866년 그의 형제들이 포졸들을 포섭하려고 돈을 싸들고 뒤쫓아 갔으나 순교자는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마라”며 돌려보냈다. 순교 후 그의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해 고향에 안장하려했지만 동네 유지들이 반대해 강 건너 도둑골에 묻혔다가 1975년 진영성당 공원묘지로 이장됐다. 그의 생가 터는 그동안 축사로 버려져 오다가 2008년 명례성당과 연접해 있는 것을 발견했고, 2011년 천주교 마산교구청에서 매입해 성역화하고 있다.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 광장에서 신석복 순교자를 복자(福者)로 시복했다. 복자란 가톨릭교회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선포한 사람을 말한다.

▲ 명례성당 내부.
 강성삼(라우렌시오) 신부는 1866년 7월 15일 충남 홍산(현재 부여)에서 출생했으며 1881년 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나가사키 신학교를 거쳐 1882년부터 10년간 말레이시아의 페낭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용산에 예수성심 신학교가 설립되자 조선으로 돌아와 1회 졸업생으로 1896년 서울 약현 성당(현재 중림동 성당)에서 강도영, 정규하 신부와 함께 서품됐다. 조선에서 실시된 첫 서품식이었으니 그는 조선 땅에서 서품된 첫 번째 신부다(김대건, 최양업 신부는 중국에서 서품됐다). 강 신부는 1897년 명례에 본당이 설립되면서 명례의 초대 본당 신부로 발령 받고 이듬해 1월에 부임했다. 첫 해 그가 사목(목회)한 구역은 밀양을 넘어 동래, 기장, 언양, 양산, 경주까지였다. 1900년에는 명례에 학교를 설립해 교육에도 힘썼다.

 1928년에 신석복 순교자 생가 터에 연접한 곳에 봉헌된 성전은 1936년 태풍으로 전파됐고, 현재 건물은 1938년에 축소 복원한 것이다. 남녀석이 구분돼 있는 성전 내부(45ㆍ59㎡) 구조는 전국에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오래된 형태로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신앙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면을 향한 제대와 그 위에 모신 십자가와 장미의 성모상에서 초기 신자들의 신앙과 영성을 느낄 수 있다. 2011년 2월에 경남도는 이 건물의 교회사적 문화사적 건축사적 의미와 그 가치를 인정해 경남도 문화재 자료 526호로 지정했다.

 ◇ 성지 조성 주요 내용 = △ 명례 언덕에 조성될 성지는 소금 행상을 하다가 소금이 돼 순교하신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영성과 초기 교회 신자들의 영성을 느끼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 명례성지는 굽이치는 낙동강의 모래밭 위에 돌산으로 된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성지는 언덕 위의 땅과 능선을 살리며 주변 환경과 어울리게 조성돼야 하며, 이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사람들과 신앙선조들의 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 이 언덕에 세워질 기념성당과 건축물은 문화재 성당(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526호)을 위축시켜서는 안 되며 오히려 돋보이게 해야 한다.

 △ 명례언덕의 서쪽 중턱에 200-250석 정도의 아담하고 절제된 규모의 성당과 전시관 연구소 등 부속건물이 세워질 것이며, 순교자의 묘가 조성될 것이다.

 △ 명례나루터 복원과 낙동강 주변 환경 정리, 명례-진례-웅천을 잇는 순례 길도 조성할 계획이다.

 ◇ 녹는 소금 운동 = 명례성지 조성위원회는 소금 장수 신석복 순교자의 영성을 따라 ‘녹는 소금 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소금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 그 수익금을 성지조성에 보탤 계획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성지를 조성하는 이유가 이웃을 위해 녹아 사라지는 마음을 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녹이는 일은 성전을 다 짓고 나서 내 삶에 여유가 생길 때 그 여유분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평생 남을 돕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살다가 결국 돕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소금 판매 수익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후 천주교 마산 교구와 상의해 수익금 전액을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성폭력 피해 외국인 여성들의 자녀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이제민 신부는 2011년부터 명례성지를 담당하고 있는 1979년 오스트리아 그랏츠 대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 1980년 사제로 서품 1986년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1998년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독일 함부르크, 창원 반송 성당에서 사목(목회)을 역임했다.

 저서에는 ‘교회-순결한 창녀’, ‘우리가 예수를 찾는 이유는’, ‘녹지 않는 소금’ 등 30여 권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