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4:03 (목)
정치인 ‘아름다운 퇴장’과 ‘살생부’
정치인 ‘아름다운 퇴장’과 ‘살생부’
  • 서울 이대형 기자
  • 승인 2015.11.10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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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형 서울지사 정치부장
등장할 때ㆍ떠날 때 알아야
용퇴 늘수록 건강사회 될 것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 있다. 그곳은 들어가기보다 나가기가 더욱 어려운 곳이다. 바로 여의도 국회다.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에서 정치권으로 들어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적당한 이력서 한 장을 들고 당 지도부와 친하면(?) 공천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줄을 잘 서면 정치생명은 더욱 길어진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은 정계를 떠나는 사람은 대체로 자기 발로 걸어나간다. 그것도 선거를 1~2년 남겨놓고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전혀 다르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불명예스럽게 정치말년을 보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인류 역사에서 정치적 위험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살생부’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특정인을 추방하기 위해 실시한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mos)가 비밀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정적을 추방했다면 살생부는 미운털이 박힌 자를 마음대로 정해서 손보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점에서 더 잔인한 방법으로 통한다.

 20대 총선이 불과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도 그 말 많은 ‘공천 살생부’가 등장할 움직임이 보인다. 경남지역 국회의원들도 혹시나 살생부에 자신의 이름이 오를까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정치인들이 살생부에 떠는 이유는 상당수가 내용이 구체적인데다 대체로 맞아떨어졌다는데 있다. 이번에도 맞아떨어질까?

 그렇다면 왜 ‘정치계절’만 되면 살생부가 등장할까? 한마디로 우리의 정치적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시스템이나 국민여론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 후진적 정치풍토가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선 그만둘 때 그만둘지 모르는 풍토때문에 오죽했으면 또 살생부가 나왔을까. 그러나 살생부는 분명 잔인한 방법인 건 분명하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정치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살생부의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지난 8월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김태호 의원이 돌연 내년 20대 총선 경남 김해을 선거구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무한경쟁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치도 진정한 실력과 깊이를 갖춘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손들이 당당히 걸어갈 조죽의 길에 최소한 걸림돌이 되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다”며 “더욱 실력과 깊이를 갖춘 김태호로 다시 설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불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모두들 의아하게 받아들였지만 분명 아름다운 용퇴다. 김 의원은 웬만하면 이 지역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던 터라 그의 불출마선언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그의 불출마 선언은 ‘조건없는 정치적 양보’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나눠 가질 수 없는 속성이기 때문에 최고의 반열에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른다. 그는 최근 임기가 끝나는 매시매분까지 김해발전에 미력한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눈앞의 이익을 포기했지만 혼탁한 이 시대에 지역을 밝혀줄 ‘큰 어른’임에는 틀림없다. 진짜 위대한 정치가는 등장할 때와 떠날 때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다. 용퇴를 분명히 하는 지도자가 많을수록 더욱 활기차고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퇴진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20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살생부에 포함돼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느니 차라리 김 의원처럼 아름다운 용퇴를 선언하고 지역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 선량들의 처신이 아닐까. 분명 국민들은 화려한 등장 못지않게 아름다운 퇴진을 하는 선량들에게 값지고 소중한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국민들은 따뜻한 박수로 애용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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