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에도 틈은 있다
어떤 것에도 틈은 있다
  • 김혜란
  • 승인 2015.11.0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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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최종 확정됐다. 방송인 김제동이 피켓을 들고 반대를 피력한 날, 교육부는 중ㆍ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확정 고시했다. 이에 여야가 대치하고 정기국회는 순항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올겨울은 마음이 더 추울까.

 삼십 년 넘게 이어진 방송생활의 단점은 마음 놓고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다.

 방송시간에 맞춰서 올 수 있는 곳으로만 여행이 가능하다. 당연히 해외로 나가거나 주말을 제외한 시간, 그러니까 1박 2일 이상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별로 없다. 내 이름 단 방송에 다른 사람이 진행하는 것은 어쩐지 청취자에 대한 배신 같아서 늘 내 목소리만의 방송을 잡고 살았다. 한마디로 내 방송인생에 ‘틈’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용기를 냈다. 마음에 틈을 만들고 시간에 틈을 만들어 다녀왔다. 국제선으로 2박 4일. 세상을 보는 일에도, 내 삶에도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했다. 세상에 늦은 일은 없다. 꼭 틈을 찾아야 하는 것들을 살펴보자.

 틈이 뭘까.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틈은 부정적이다. 단점이고 망함이며 패배, 멸망의 징조로 여긴다. 틈이 생기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선지 틈이 생기면 끝장인 것으로 체화돼 오랫동안 살았다. 그런데 사실, 틈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건 사람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런 틈을 끝까지 없애기 위해 살아가는 내내 전전긍긍하는 행위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허무주의만으로 삶을 해석할 수는 없다.

 멀리서 보면 전혀 틈이 없는 일이 가까이 다가서면 틈을 보인다. 때로는 가까이서 보면 틈이 없는데, 멀리서 보면 그게 보인다. 신기하다. 그 틈을 확장하니 삶이나 세상이 여러 방향에서도 보인다. 답답하던 것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고 여러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해석하게도 만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도 있다.

 틈을 긍정적으로 찾아보면 분명히 또 다른 길이 있다. 단점 같이 여겨지는 틈을 찾아내서 크게 보고 뒤집어 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서로 화합하고 또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내 틈 보이고 너 틈 보이면 된다. 그래서 인생에 필요 없는 것 따위는 없나 보다. 마음이나 현상이나 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1998)에서 선생은 감옥 창문 사이 틈에 자라난 풀을 발견하고 시를 한 편 지었다고 했다. ‘우리 방 창문 턱에/ 개미가 물어다 놓았는지/ 풀씨 한 알/ 싹이 나더니/ 어느새/ 한 뼘도 넘는/ 키를 흔들며/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창문 사이 틈이 없었다면 풀씨도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의 틈은 숨 쉴 공간일 것이다. 절망을 이겨내고 견디게 하는, 작지만 아주 위대한 틈….

 어떤 일과 일 사이, 팽팽한 긴장으로 맞서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 혹은 온갖 과학 첨단기술을 모아 만들어진 건축물에도 반드시 틈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든 일은 더욱 그렇다.

 너와 나 사이, 부부 사이에도 그 틈을 찾아서 메우려고 하고 크게 하려 한다. 싸우고 화해하고 어울려 살아간다. 틈은 없어서도 안 되고 많아서도 안 된다. 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틈 사이에 또 다른 출구를 만들 수는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입장의 팽팽한 맞섬이 숨 막히게 한다. 그렇다면 그 틈은 무엇일까. 틈을 찾아 숨 쉬고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상식이나 자기편, 혹은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워서 있는 틈을 무시하고 지금 이 시점, 내게로만 모든 생각과 행동을 모으는 일은 우주질서의 반칙이다. 각자의 주장을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하자. 그리고 상대방의 주장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보자. 그리고 틈을 찾자. 작은 틈은 보잘것없는 것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우주 전체만큼 원대하고 큰 힘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만 배운 역사를 다시 공부해 볼까. 역사 공부 같이 할 사람, 다 모여라.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확정은 모든 국민들이 학교 다닐 때 그 지긋지긋했던 역사를 새롭게 공부하게 만든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 놀라워라. 위대한 ‘틈’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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