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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해도 왜 성적 안 오를까
열심히 공부해도 왜 성적 안 오를까
  • 김금옥
  • 승인 2015.10.28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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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김해삼계중학교 교장
 김해삼계중학교는 교사와 짝지어 학부모가 부감독으로 입실하는 복수 시험 감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 온 학부모들이 감독을 하면서 곧잘 던지는 질문이 있다.

 “우리아이는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왜 성적이 안 올라갈까요?”

 최근 후성유전과 관련한 책 한 권을 읽으니 학부형들의 그 질문에 한 가지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성유전학의 권위자인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네사 캐리 교수는 ‘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에서 유전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DNA를 마치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쏟아 붓기만 하면 똑 같은 부품이 나오는 주형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연극 대본에 가깝다.”

 같은 대본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오듯이, 동일 유전자라도 어떤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운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유전자가 대대손손 바꿀 수 없는 철벽같은 염기 구조는 아닌 모양이다.

 가령, 일벌과 여왕벌은 유전자가 100% 일치하지만 일벌의 수명은 겨우 2~3주 정도이지만 여왕벌은 3~4년 이상을 사는데 그 차이는 순전히 애벌레 시절부터 먹는 먹이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영양공급이 인간의 후성유전에도 깊게 관여한단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나치가 연료와 식량을 봉쇄하는 바람에 한때 네덜란드 국민은 1일 적정 칼로리 섭취량의 30%에 불과한 식량으로 연명하면서 2만 2천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을 겪은 적이 있다. 단지 6개월이지만 당시 영양실조를 겪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은 평생 동안 체중에 영향을 받았고 그들이 성인이 돼 출산한 아기까지 체중과 관련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영양 섭취 외에, 보고 듣는 것, 그리고 트라우마까지 유전자의 스위치를 작동시킨다고 한다. 생후 일주일 동안 털을 핥아주는 등 어미의 보살핌을 받은 생쥐는 그렇지 못한 생쥐에 비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견디는 힘이 강했다고 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9ㆍ11테러 같은 강한 트라우마를 겪을 경우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반응물질이 높게 나타났는데, 그 이후에 낳은 자녀들 까지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게다가 우수한 유전자를 위해서는 부모의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흑인 대통령 후보인 벤 카슨은 미국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8살이 되던 해에 부모는 이혼을 했다. 까막눈의 가난한 어머니는 식모살이로 아들을 키웠는데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이 꼴찌 성적표를 받아들고 오자 결단을 내리게 된다. 도서관으로 데려가 매주 두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한 것이다. 자연도감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은 그는 점차 성적이 좋아졌으며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위업을 달성한 전설적인 외과의사가 됐다.

 열심히 공부해도 아이가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아이 탓만을 할 것이 아닌 듯하다. 어른들이 먹고 보고 생각하는 것을 유전자로 물려받는 것은 물론 일상에서의 부모의 지혜로운 선택이 자녀의 운명을 바꾸니 말이다.

 최근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금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라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필자의 둘째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지은 표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 막 글을 익힌 딸이 수업시간에 지은 표어를 가져와 집의 거실 벽에다 자랑스럽게 붙여 놓았던 것이다. ‘아빠가 피우면 나도 피운다’ 남편은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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