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6:09 (목)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 김혜란
  • 승인 2015.10.28 2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최근에 심각하게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한 영화가 있다. 왕년의 히어로 ‘로버트 드 니로’가 70세 신입사원으로 주연을 맡았던 미국영화 ‘인턴’이다.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도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유별났다. 감독이 인스타그램으로 “쌩큐, 사우스 코리아!”라고 감격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30대 주부가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해서 단시간에 사원 200명을 거느린 회사로 키웠다. 이 회사에 70대 인턴이 들어온다. 운전기사인 줄 알았던 이 주인공은 노련하다. 어린 직원들에게 슬쩍슬쩍 필요한 말을 적재적소에 던진다. 외부 CEO 영입 문제로 고민하는 사장에게는 “이 정도로 회사를 키운 사람은 당신”이라며 자신감을 불어넣고, 여자 친구와 싸운 직원에게는 “꼭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라”고 조언한다. 직원들은 주인공을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게까지 된다.

 미국인들에게 ‘키다리 아저씨’란 멘토의 원형 같은 존재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멘토 역할을 어느 정도나 하고 있을까. 아니, 할 기회는 제대로 주어지고 있을까.

 자신감에 넘치는 노인들은 외모만 보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란 호칭은 일제의 잔재로, 직계 가족에게나 부르는 말이란 것이다. 듣기 싫은 호칭 중 ‘어르신’도 꼽는다.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 우대석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노인도 있다. 부럽고 따라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은 이런 부러움을 눌러 앉힌다. 자신감 넘치는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이 너무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노인연령 기준을 70세로 올리려는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100세 시대,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3.1%인 660만 명에 달한다. 또한 100명 가운데 47명은 한 달 수입이 78만 원도 안 되는 빈곤층으로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평균의 4배다. 특히 이들의 전체 소득 가운데 근로소득의 비중은 50%로 자신이 직접 일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현실이라는 통계도 뒤따른다.

 만일 정부가 각종 노후 복지 혜택이 시작되는 노인의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늦추는 방안을 어떻게든 만들어 내면, 당장 노인 인구 660만 명 가운데 100만 명이 기초연금조차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로 밀려나게 될 것 같다. 현재 기초연금이 65세부터, 국민연금은 62세부터 지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노인연령을 상향 조정하려는 이유는 노인복지 축소로 국가 재정을 절감하겠다는 이유가 가장 큰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의 평균 퇴직 연령이 53세로 보고 있는데, 53세에 퇴직해서 70세 노인이 될 때까지 17년 동안이나 살아갈 방법이 난감한 상황에 처한 국민이 많아질 것이라는 반응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노래 부르고 사랑타령 하며 나이 자랑만은 할 수 없는 현실이 바로 코앞에 왔다.

 어린 날, 참 좋아하던 구절이 있다. ‘젊음이 알 수만 있다면, 늙음이 할 수만 있다면(Si jeunesse savait, si vieillesse pouvait)’ 청춘에는 힘은 있지만 지혜가 없고, 노년에는 지혜는 있으나 힘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이제는 이 구절도 솔직히 좋아할 수 없다. 늙음도 힘 키워서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노인의 죽음은 마을도서관이 불타버리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마을도서관 수준이 되려면 지금부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노년이 아름답다고 허세만 부리고 있기에는 다가올 미래가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다.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 이대로 살다가 갈 수 있을 텐데, 보이니 외면할 수도 없다. 어리지 않은 사람의 기본 도리다. 개인이 할 수 있는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가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국가도 젊은이도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운동화 끈 고쳐 매면서 다시 중얼거려 본다. “내 나이가 어때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