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22:51 (수)
阿房宮(아방궁)
阿房宮(아방궁)
  • 송종복
  • 승인 2015.10.28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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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阿:아 - 산비탈 房:방 - 집 宮:궁 - 궁궐

 여인들과 향락을 즐기는 공간으로 보거나, 권력자의 저택이나 유흥업소를 비꼬아 말하고 있다. 원래는 주변의 침입을 대비해 나를 보호하는 궁전으로 지은 것이다.

 아방궁은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건립한 최대 규모의 황궁이다. 아방궁(阿房宮)의 원래의 한자는 아방궁(我防宮)이다. 즉, ‘我防宮(我: 나-아, 防: 막을-방, 宮: 집-궁)’이란 ‘나를 보호하는 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원뜻은 흐려지고 마치 무희와 유흥하는 타락된 궁전이라는 뜻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또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아방궁 같다’ 하면 ‘이미지’가 흐려진다.

 중국 진시황제는 주위의 육국(六國, 초ㆍ연ㆍ제ㆍ한ㆍ위ㆍ조)을 멸망시키고, 그 육국의 궁전을 본뜬 육국궁(六國宮)을 지었다. 그러던 중 자신을 암살하려는 세력을 의식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공간이 바로 아방궁(我防宮)인 것이다. 이 궁전은 셴양[咸陽]의 대안(對岸)에 진시황이 즉위부터 짓기 시작해 2세 황제에 의해 완성됐다.

 이때 지은 ‘아방’(阿房)이란 수도 셴양[咸陽]에서 ‘가깝다는 뜻’과 또 ‘사방이 넓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여하튼 옛 지명 또는 궁전의 사방이 모두 방(房)이어서 아방이라고 했다. 이는 원래 我防宮이었던 한자(漢字)를 阿房宮으로 바꿔 쓰기 때문이라 본다.

 황제는 이 아방궁 주위에 회랑(回廊)을 짓고, 이곳에서 가교(架橋)를 세워 남산으로 직행할 수 있도록 했고, 거기서 위수를 건너 함양(咸陽) 성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궁이다. 그 규모는 <사기(史記)>에 의하면 동서 700m, 남북 120m 정도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 명 정도 수용할 수가 있다. 이 궁은 BC 207년 초(楚)의 항우(項羽)가 진(秦)을 칠 때 불이 났는데, 불길이 3개월 후에 겨우 꺼졌다고 한다.

 이때 지은 아방궁은 자신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1.5m나 되는 넓은 벽을 모두 자석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칼을 품고 들어오는 사람은 칼이 자석 벽에 붙어 절대로 진시황 앞에 도달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이런 아방궁을 우리는 마치 진나라 시황제가 여인들과 향락을 즐기는 한낱 타락의 공간으로만 알고 있다.

 이 외에도 부와 권력을 가진 큰 저택이나 호화롭게 장식한 유흥업소를 나쁜 뜻으로 아방궁이라 부르는데, 이는 아방궁 본래의 취지가 아님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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