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송종복
  • 승인 2015.10.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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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1950년 6월 25일, 이날을 그동안 ‘6ㆍ25동란’, ‘6ㆍ25사변’, ‘6ㆍ25 그날’ 등으로 불렸다. 이는 일제식민사관이니 최근에는 ‘6ㆍ25 한국전쟁’이라고 통일시켰음을 일러둔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이는 1950년 민족상잔의 전쟁인 6ㆍ25노래가사다. 이 가사는 박두진이 쓰고, 김동진이 작곡했다. 이 노래를 우리가 부르면 북한이 원수가 되고, 북한이 부르면 반대의 뜻이 될 수도 있다. 즉 적(敵)의 무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 금강산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니 가슴이 찡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니 바로 6ㆍ25전쟁인데, 이를 젊은 세대에게 원인 규명을 해주는 게 급선무다. 요즘 학생들은 6ㆍ25 노래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 적어도 40대 이상은 이 노래를 열심히 불렀을 것이다. 즉, 고무줄놀이에도 써먹고, 나무꾼은 지게목발을 치면서 목이 터져라 불렸다. 학교에서는 애창곡으로 소풍이나 운동회 때 두 주먹 불끈 쥐고 힘차게 ‘적군’을 향해 불렸다. 이 전쟁으로 남한군인의 사망자는 14만여 명, 실종자는 4만여 명, 상이군은 45만여 명, 민간인 사망자는 37만여 명, 부상자는 23만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피난민이 240만여 명, 전쟁고아가 10만여 명, 자식 잃은 부모가 200만여 명, 청상과부도 20만여 명이나 발생했다. 부상자는 팔과 다리를 잃고, 총상으로 신음하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북한이 남침해 만들어 놓은 전쟁고아, 부모는 거의 죽음에 이르고, 남은 분이 바로 오늘날의 이산가족들이다.

 그런데 어느새, 이 나라의 ‘조국(祖國)’은 간데온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원수(怨讐)’는 지구상에서 다정한 친구가 됐는가. 6ㆍ25 침략군들의 딸들이 남쪽으로 무슨 응원이라도 오면 그 미끈한 매력과 훈련된 동작에 매혹돼, 그녀들의 숙소와 응원석을 맴돌기도 하니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는 이제 무색한 노래가 되고, 또한 정권이 바뀌자 6ㆍ25의 행사도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6ㆍ25의 원혼’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족공조는 그대로 추진하고, ‘6ㆍ25기념과 노래’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없애서는 안 된다. ‘6ㆍ25원혼’에 대한 제사인 6ㆍ25행사는 관계부처에서만 해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이 다 함께 전쟁의 참상(慘狀)기념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6ㆍ25참상’을 올바르게 상기시키는 것이 기성인들의 소임이다. 남한이 뭔가 잘못해서 일어난 것처럼 6ㆍ25의 노래를 지우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또한 가사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면, 그에 맞게 개사(改詞)하면 된다. 침략자의 눈치 보느라 비굴하게 놀지 말고, 희생된 100만 명의 원혼들에게 제사(기념행사)라도 제대로 드려줘야 하는데, 이마저 금년에는 ‘메르스’ 발병으로 취소되는 상태가 됐다. 미국 철학자 산타야나는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것을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이에 ‘사단법인 경남향토사연구회’는 다음 달 11월 19일 ‘6ㆍ26전쟁 참상’과 ‘학술세미나’를 열어 호국영령들의 아픔을 달래고, 또한 그날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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