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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투어 떠나다
공감투어 떠나다
  • 김은아
  • 승인 2015.10.19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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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
 김해문화재단 ‘만만한 문화기획학교’에서 세 번째 1박 2일 공감투어를 떠났다. 일상에서의 떠남은 설래임을 동반한다. 누군가를 만나서 인연을 맺고, 보지 못한 것을 보며 나를 키워 간다.

 경북 칠곡, 영천, 대구에서 그들이 꿈꾸는 문화를 찾고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칠곡 18개의 농촌 마을에서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을회관에 모여 화투장만 만지작거리며 며느리 흉을 보던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인문학은 시작됐다. 마을의 유래를 기억하고 장독대의 된장과 마을 앞 단감 농사 이야기, 마을이 이야기로 넘쳐나는 순간 문화는 기억을 만들어내고 끄집어낸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공동 빨래터가 주민들의 손으로 다시 복원되고 그 속에 묻혀있던 삶의 애환도 함께 끄집혀 나오게 된다. 하나, 둘 모인 이야기가 사람도서관으로 생겨나고 책으로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을 통해 추억과 기억으로 듣게 된다. 어느 마을에나 다 있는 이야기가 사람으로, 책으로 엮어져서 그 마을만의 유일한 역사책이 된다.

 영천 별별마을에는 폐교 속에 아름다운 ‘시안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소풍을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잔디밭에 팔을 괴고 누운 사람들 속에 가을이 묻어 있다. 마을에는 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기대는 실망을 함께 한다. 작가들이 설치해 놓은 작품들은 사후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녹이 쓸고, 바닥이 삐꺽거려 위험하기까지 하다. 야심차게 준비한 마을 별별카페는 먼지와 거미줄 속에 묻혀 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은 지난 세월만큼 흐려져 있고 그 옆에는 새로운 설치 작품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행복 프로젝트 ‘新 몽유도원도’의 영화롭던 시절의 뒷모습은 씁쓸함만을 남기고 있다.

 대구의 밤거리는 차분하면서도 화려했다. 동성동 거리에서는 ‘화교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차가 다니던 길에 길거리 매대들이 자리를 하고 입구에서는 가면 복장을 한 사람들에게 스템프를 받아오면 인근 매장의 상품 할인권을 주는 재미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티켓을 손에 들고 괜히 한 번 더 사람들을 쳐다보게 된다. 근처 화교 초등학교에서는 중국 전통 놀이들이 무대에 올라와 박수 갈채를 받고 있었다. 밤에 걷는 근대사 골목길은 새롭게 느껴졌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했던 ‘이상화’ 시인의 고택 앞 모과나무가 불빛을 받아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낮에 본 북성로 공구골목은 언뜻 보면 허름한 공구상가들이 즐비한 골목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복원된 근대 건물들을 찾는 재미가 솔솔 하다. 젊은 문화기획자들의 손에 되살아난 근대 건물들은 그 정체성을 찾아 복원돼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근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속에 현재를 담아 두었다. 전통 찻집일 것 같은 건물에서 먹는 돈까스와 스파게티는 사람들의 미각을 새롭게 자극했다. 자전거를 수리하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정거 살롱’은 젊은이들의 소통의 공간이자 정거장이 됐다. 골목, 골목, 상가, 상가의 역사를 찾고 그것으로 만든 골목지도는 근대사 거리의 기틀로 자리 매김할 것 같았다. 북성로에 향수를 자극하는 공구 골목이 있다면 동성로에는 ‘김광석 거리’가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하루 스무 명도 다니지 않은 골목길을 한 젊은 기획자의 엉뚱, 발랄한 아이디어로 하루 오천 명이 넘쳐나는 거리로 탈바꿈이 됐다.

 사람이 흐르는 곳에는 문화도 함께 흐른다. 하지만 사람이 빠진 마을에는 문화도 멈추게 된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 문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흐르고 그 속에 내가 함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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