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藏經(대장경)
大藏經(대장경)
  • 송종복
  • 승인 2015.10.1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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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大:대 - 큰 藏:장 - 감추다 經:경 - 글

 대장경의 판각목적은 불력으로 적을 물리친다는 이념에서이다. 用材인 자작나무는 지리산 인근의 거제도, 완도, 사천, 남해 등 주로 경남의 해안가에서 채목했다.

 대장경을 일명 팔만대장경ㆍ일체경ㆍ삼장경ㆍ장경 등으로도 부른다. 이는 고려 고종 때 판각한 것으로 국보 제32호이며, 해인사 경판고에 보관돼 있다. 내용은 대승(大乘)ㆍ소승(小乘)ㆍ삼장(三藏)으로 돼 있다. 삼장이란 석가의 설법인 경장(經藏), 교단의 계율인 율장(律藏), 경(經)의 주석문헌인 논장(論藏)을 집대성한 것이다.

 한국에서 인각한 대장경은 1011년(현종 2)의 초판[현종판]과 1091년(선종 8)에 간행된 <속장경>이 있다. 이들을 대구 부인사에 보관돼 오던 중 몽고[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지금 해인사에 보관 중인 것은 <팔만대장경>으로서 1236년(고종 23)에 시작해 1251년(고종 38)에 완성한 것이며, 장판은 8만 1천350장이다. 이는 세계사적 보존의 가치가 있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해 대몽항전을 할 때, 교정별감 최우는 아뢰기를 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대장경을 다시 판각하는 것이다 하니 윤허했다. 이의 총책은 수기대사(守其大師)가 맡았다. 우선 판각을 위해 대장도감을 두고 ①경전채택, ②필생확보, ③각수훈련, ④판목벌채를 준비했다. 이 중 급선무는 판목구입이다. 따라서 단단하고 결이 좋은 자작나무를 판목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이 판목을 바닷물에 3년간 담가서 진을 빼고, 다시 건져서 그늘에 2년간 건조시켜 견고한 판목을 만들어야 했다.

 수기대사는 筆生(필생)과 刻手(각수)들을 뽑기 위해 반년이나 전국을 돌아다녔다. 특이 용재(用材)인 자작나무는 지리산 인근의 해안가 거제, 완도, 사천, 남해 등지에서 채취토록 했다. 한편, 筆生과 刻手 100여 명을 뽑아 삭발과 목욕재계케 하고, 판목이 도착될 때까지 筆刻 훈련을 시켰다. 고종 23년 2월에 전국에서 가져온 1천여 장의 판목에 글을 새기기 시작했다. 필생 100여 명이 하루에 두 장씩 200장의 경판용 글을 쓰고, 각수는 하루에 50자까지 각조 했다.

 당시 남해(南海)에 분사도감을 설치하고는 대장경 판목의 채취ㆍ건조ㆍ운반한 곳임을 확인키 위해 학술회를 열고 있다. 정말 장한 일이다. 호국의 상징으로 未曾有의 강국을 40여 년간이나 항전한 것은 대장경 덕분이다. 최근 왈가왈부하는 국사도 대장경과 같이 ‘올바른 국사’로 바로 잡아 민족의 정신적 경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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