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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용변을 어떻게 보았을까
임금은 용변을 어떻게 보았을까
  • 송종복
  • 승인 2015.10.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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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용변은 대변과 소변으로 구분하되, 이를 처리하는 장소를 변소 또는 화장실이라 한다. 한편 해후소(邂逅所), 해우소(解憂所), 측우소(厠寓所), 해우소(解寓所), 휴게소(休憩所) 등으로도 부른다. 그런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宮殿)에는 화장실이 없다. 이 때문에 관람자에게는 미리 용변을 보도록 한다. 동시대에 조선왕의 침실에도 화장실은 없다. 따라서 왕의 용변은 반드시 궁녀 앞에서 누어야 한다.

 왕은 자신의 뱃속에서 용변신호가 나오면 복이나인(僕伊內人)을 부른다. ‘복이나인’은 복이처에 속한 궁녀로서 궁궐내의 조명ㆍ난방ㆍ청소 등을 담당한다. 이 뿐만 아니라 궁중의 온갖 잡일은 물론이고 ‘아주 불쾌한(분뇨:糞尿)’ 사무까지 처리한다. 즉, 왕의 용변을 받아내는 일이다. 왕이 대소변을 볼 때에는 침전의 방 한쪽에 4각형의 휘장을 둘러친 곳에서 용변을 본다. 용변 볼 때는 궁녀들이 이동식 변기인 매회틀(梅灰틀ㆍ梅花틀ㆍ梅雨틀)을 가져와 받혀놓고 그 위에 용변을 보게 한다.

 청나라 선총제(宣統帝) 溥儀(푸이)의 삶을 그린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는 환관이 황제의 용변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의 경우도 왕이 용변을 보기위해 부름이 있으면, 복이나인(僕伊內人: 궁녀)이 매회틀을 갖고 달려간다. 이때 매회틀 속 虎子에 매화 꽃잎을 태운 매회(梅灰:매화재)를 뿌리고, 용변을 보게 한다. 매회틀은 청동 용변기를 넣고 빼고 한다. 여기에 용변을 보면 호자에 떨어진다. 이때 궁녀가 그 호자를 내의원에게 가져가면, 용변의 맛과 빛을 보고, 건강 상태를 살피고는 그 결과에 따라 탕약을 처방한다.

 한 예로 1461년 8월 19일, 제7대 세조가 전교(傳敎)하기를 “개성부 전봉(全奉)은 품질이 좋은 송이버섯을 올렸는데, 권지(權摯)는 품질이 나쁜 것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혼측(옥외변소)도 만들지 안했다”며 파직한 적이 있다. 1849년 5월 14일, 제24대 헌종의 용변[분뇨]이 좋지 않아 내의원에서는 진료를 행한 적이 있다. 이때 권돈인이 왕에게 ‘면부(面膚)에 부기(浮氣)가 있으니, 대소변은 어떠하십니까?’하니, 헌종이 ‘대소변은 잘 나온다마는 약간 부기가 있어 쾌히 낫지 않았다’고 했다.

 이같이 용변이 끝나면 복이나인(僕伊內人)은 2통의 물을 가져와서, 하나는 국왕의 손을 씻고, 또 하나는 북수(北水)라 해 뒤를 씻는다. 국왕의 손과 뒤를 씻은 후 복이나인은 비단으로 깨끗이 닦아 드린다. 이를 싫어하는 왕도 있었다. 제15대 광해군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신하에게 간섭받는 것이 싫었다. ‘癸丑日記(계축일기)’를 보면, 광해군은 용변을 볼 때마다 남의 감시를 받아야 하느냐고 하면서, 구속을 싫어하고 일반인들처럼 그냥 뒷간에 가서 자유로이 용변을 보았다는 유일한 왕이다. 시대는 많이 변했다. 요즘은 수세식 용변기로 변했기에 옛날같이 신하에게 간섭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니 부하들의 심정을 오죽할까. 내키는 대로 하면 되는 세상이다. 마치 용변을 고집하는 광해군이 재등장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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