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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호두
토종 호두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5.09.23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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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편집위원
 매년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여 성묘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오순도순 모여서 얘기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차례만 지내고 전 가족이 호두따기를 해야만 했다.

 도시에 사는 형제들 모두 따로 시간을 내서 일부러 올 수가 없어 전 가족이 모이는 추석에 호두도 따고 집안일도 거들고 나면 훨씬 마음도 편했다.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니 당연한 일이다.

 호두의 수확 시기는 대체로 백로가 지난 뒤 1주일에서 2주일 후인, 9월 하순에서 10월 중순까지이다. 호두는 외과피에 균열이 생기고 열매가 3할 정도 떨어지는 시기가 수확 적기이며 이 시기에 수확하면 색택이 좋은 호두를 생산할 수 있다.

 수년 전만 해도 고소득 작물인 호두를 따는 일은 동네에서 자랑할 일이었고 뿌듯한 연례행사였다. 호두에서 수익을 많이 올리려고 하면 알 호두 상태로 팔아야 한다. 알 호두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확한 미열 갯과를 한 곳에 모으고 젖은 거적을 덮어 두면 1주일 이내에 외피가 서서히 부식하기 시작한다. 거적으로 덮은 후에도 수시로 관찰해 외과피가 일정 부패하고 갈라지면 외과피인 청피를 나무작대기로 때리거나 발로 밟아가면서 벗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튄 호두물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옷에 튀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맨살에 묻었다면 마치 안 씻어서 때가 낀 것처럼 보이였다. 당시에는 까무잡잡하게 물이 든 손이 보기에는 불편했지만 호두를 많이 수확했다는 증거였고 자랑이었다. 물에 깨끗이 씻은 호두를 멍석이나 슬레이트 지붕 위에 말리면 가을 햇볕에 잘 건조돼 색택이 좋아진다. 건조시킨 호두는 가마니에 담아 방에 보물처럼 보관하다가 호두를 파는 날은 밥상에서 귀한 고등어 냄새라도 맡을 수 있었다.

 찬바람이 불고 호두나무에 달린 마지막 잎새까지 떨어지고 나면 호두 이삭을 줍기 위해 몇 번이고 호두나무 주위를 헤매고 다닌 적이 있다. 가끔 나무 위에 달려있는 호두가 보이면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호두가 먹고 싶었지만 하나라도 더 팔아야 했다.

 그런 호두가 이제는 호두를 따서 건조시키는 일을 할 노동력이 없어서 청피가 있는 상태로 팔기도 하고 아예 호두나무 전체를 임대하기도 한다.

 올해는 기후변화 탓인지 하루아침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다는 백로도 되기 전에 초록색 집 속의 잘 여문 호두를 일찍 볼 수 있었다.

 호두를 따기 위해서는 10m 이상의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장대를 휘둘러야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나뭇가지가 약하고 가늘어 항상 조심해야 한다. 비가 오거나 비가 온 후에 나무에 오르는 것은 나무가 미끄러워 더더욱 위험하다.

 호두를 따는 일도 쉽지 않지만 줍는 일은 키보다 훨씬 큰 들깨나 덤불처럼 엉킨 콩밭의 밭고랑을 샅샅이 기어 다니면서 주워야 하는 일이라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올해도 어른 8명이 종일 호두를 따고 주웠는데 외피가 있는 상태로 854㎏을 수확했다.

 최근 토종 호두의 명성이 말이 아니었다. 농협에서는 40㎏ 호두포대를 제공하고 2013년 1㎏에 3천200원, 2014년 1㎏에 2천100원을 올해는 1㎏에 1천200원에 수매했다. 가격이 이렇게 내려가도 농민들은 별다른 대안이 없다. 1년 호두 농사로 250만 원을 투자해 102만 4천800원을 번 셈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건강식품 중 하나로 호두는 샐러드나 쿠키 등 다양한 요리에 많이 활용되며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A, 비타민B가 풍부해 아이들 영양 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호두에는 두뇌 발달에 필요한 DHA의 전구체인 리놀렌산이 풍부해 오래전부터 건뇌식품으로 알려져 왔다.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렌산은 뇌세포에 필수적인 성분으로 뇌 기능을 도와 기억력을 높여준다.

 호둣속 식물성 DHA는 생선에 함유된 동물성 DHA에 비해 흡수율은 떨어지지만 안전성 면에서는 훨씬 뛰어나다. 호두는 두뇌를 건강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을 다량 함유해 열대야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아이들이 숙면을 취하도록 도와준다. 호두는 양질의 단백질과 소화흡수가 잘 되는 지방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최근에 충남 천안의 대표 특산품인 ‘천안호두과자‘의 국내산 재료 사용에 따른 명품화가 추진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밀과 앙금용 팥을 수입산을 대신해 국산으로 늘려 고급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호두도 국내산으로 대체해 국내산 호두의 소비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두는 7년 이상 재배해야 수확할 수 있고 국내 재배면적도 많지 않아 기본적으로 미국산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우리 토양에서 자라고 수확한 국내산의 진하고 고소한 맛은 비교가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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