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2:20 (화)
영화 ‘콘택트’ 과학산책
영화 ‘콘택트’ 과학산책
  • 조성돈
  • 승인 2015.09.20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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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범주서 벗어나면 비과학 규정
‘앨리’의 18시간은 거짓 논란
시간의 절대적 잣대 없을수도

 영화 ‘콘택트(Contact)’는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를 원작으로 한 SF영화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고, 극찬을 했다. 오랜만에 다시 본 이 영화에 대한 사색의 초점은 과학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SF란 반드시 어려운 과학이론을 필요치 않는다. 그러나 흥미를 유발하는 상상력 자극은 필수다. 콘택트에 복잡한 과학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서사구조는 없다. 그럼에도 관객에게 상당한 상상 또는 사색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색은 예로부터 진리를 구하고자 노력했던 선인들의 노력과 같은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주로 종교나 철학의 과제로 흡수되어버렸지만, 과학의 안쪽이든 바깥이든 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여자 주인공(앨리)은 그 해답을 과학에서 구하려 한다. 그녀가 경험한 외계의 18시간이 지구에서는 단 몇 초에 불과하다. 거기에 시비를 걸 관객이나 독자는 물론 없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또 밝혀질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근거 역시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과학의 한계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과학은 증명하고자 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증명할 수 없는 과제는 처음부터 과학의 범주에서 제외시킨다. 그리고 비과학으로 부른다. 그래서 당연한 의문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은 과연 정형화된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혹은 그것을 사용해 사물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미 오래전 과학철학 쪽에서 제기했던 그러한 의문은 점차 강화돼 가는 추세이다. 필자가 SF영화 ‘콘택트’를 들고 나왔지만, ‘매트릭스’나 ‘아바타’ 등 다른 SF영화를 즐기기 위한 관객으로서의 준비는 동일하다.

 그녀가 수신한 메시지는 1936년 올림픽 중계방송 때 흘러나간 나치 히틀러의 연설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다시 지구로 수신된 것이다. 프레임 사이에 수만장의 디지털 신호가 담겨있었다. 천둥은 물론 잔잔한 호수의 물결조차도 디지털 부호로 바꿀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외계의 의식이 정보의 형태로 작용, 문자나 부호에 담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때 의식은 외계 생물체의 의식이다. 바위의 모습이 인간을 흡사 닮았을 때, 사람들은 자연이 빚어낸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주로 과학자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정보가 바위의 침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상당한 증거들이 있다. 심지어 물질끼리도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결된 진동자의 실험’에서처럼, 물리학에서의 싱크러나이제이션(동기화)이 그것이다. 수신된 신호가 여자 주인공 혹은 이미 사망한 그녀의 아버지가 생각하고 있었던 무의식의 소산, 혹은 과학자들을 포함한 인류의 집단무의식일 수도 있다. 증명하기 어렵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엘리는 우주선을 타고 엄청난 진동 속에서 웜 홀을 통과한다. 그녀는 마침내 아름답기 그지없는 베가성에 도착, 아버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발사된 지 단 몇 초만에 우주수송기가 바다에 낙하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의 명백한 증거로 인해 그녀가 경험한 18시간의 외계 여행은 그녀가 만들어 낸 허구 주장으로 판명된다. 그녀가 경험한 시간이 과학적 증명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본다면 그것을 거짓으로 볼 증거 또한 없다. 과학적 방법론의 주요 요소들인 실험, 관찰, 인과관계, 결론의 일반화 등은 지금도 다분히 철학의 영역이다.

 지구에서의 몇 초와 외계에서의 18시간이 동일한 시간일 수 있다는 점은 이론물리학자들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시간과 길이를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가장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물리량은 빛의 속도와 양자역학의 플랑크 상수 정도이다.

▲ 조성돈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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