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3:59 (화)
말을 대신하는 것
말을 대신하는 것
  • 김혜란
  • 승인 2015.09.16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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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말하는 일 자체를 업(業)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말하기 싫다고 뚝 끊을 수는 없다. 업(業)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4~5년 전부터 찾은 방법이 있다. 내게 주는 휴가로 산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말없이 벽만 보고 앉아 있다가 온다. 처음에는 좀 겸연쩍었다. 웬 중늙은이 여자가 법당에서 벽보고 앉아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출가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고 산사는 오히려 그런 행동이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이 일 역시 아무리 좋아도 자주 할 수 없는 호사다. 하는 일의 속성상 거하게 휴가받아서 쉬면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찾은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그림을 보는 일이다. 특히 최근에는 여백이 많은 동양화를 보면 즐거움과 쉼이 함께 찾아온다.

 여행만이 쉼의 전부인 것처럼 너도나도 여행을 권한다. 여행 좋은 줄은 안다. 그렇지만 변명이 아니라 여행 역시,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를 전제로 하기에 만만치 않다. 그럴 때도 그림을 본다. 어딘지 몰라도 느낌이 좋은 산수화나 풍경화 앞에 서면 곧장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시간만 있으면 된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가난한 집의 장녀라 꿈을 펼칠 기회는 없었지만 중학교 미술 시간, 퍼포먼스나 이벤트 같았던 그림 수업은 내게 그림을 향한 뜨거운 그리움 하나를 심어줬다. 대학에서 그림을 배우고 싶었지만 미술학원에 가야만 전공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내게는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단 한마디조차 꺼내보지 못하고 접었던 그림에 대한 꿈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수채화를 몇 개월 배워본 것이 꿈 찾기의 전부였지만, 그 대신 어쩌다 잡지나 팸플릿 속에서 끌리는 그림을 만나면 꿈속에까지 아른거렸다.

 몇 년 사이 옛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서양의 옛 그림이 순서상으로는 한참 앞섰지만 동양의 옛 그림들, 그러니까 중국과 한국의 옛 그림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TV에서도 자주 그림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해석하며 보여준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옛 그림에 관한 대중적인 관심은 최근 들어 모든 공부의 대세라는 인문학 열풍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이지만, 옛 선현들은 그들의 생각을 담는 또 다른 그릇으로 그림이나 음악을 택했다. 옛 그림이나 옛 노래 역시 인문학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선비들이나 글을 읽은 사대부 부인들, 심지어 몇몇 ‘해어화’들까지도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고 시를 노래로 읊었다. 놀이나 유흥의 개념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을 넣고 싶어 했다. 현대 역시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 선조들만큼 생각과 철학을 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현대의 그것들에는 느낌이나 감정이 대세다. 그것들의 호불호를 차치하고.

 어떤 그림이든 그 속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간과 공간, 사물의 배치 속에 이야기가 숨어 있다. 꽤 많은 법칙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리는 사람들의 약속이거나 비평하는 사람들의 잔소리지, 보는 이의 생각이나 느낌은 무한대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데는 제한이 불가능하다. 순전히 아마추어인데도 그림을 보면서 얼마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지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도 주변에 있다.

 왕유는 “그림은 소리 없는 시(詩)”라고 했다. 어떤 이는 법이 없으면서도 법이 있다고 했다. 당나라 장언원이라는 화가는 이런 말도 했다. “뜻보다 먼저 있고 그림이 다 해도 뜻이 남아있기”.

 법까지는 몰라도 말하기 싫을 때, 떠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 그림 속으로 떠나면 어떨까. 정말 해 보고 싶은 일은 말을 할 수 없을 때, 선조들처럼 그림 속에 이야기를 숨겨놓는 것이다. 소리 없는 시를 써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할까. 혹시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 많은 시대가 다시 왔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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