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8:41 (화)
벌초의 인문학적 의미
벌초의 인문학적 의미
  • 한중기
  • 승인 2015.09.14 2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중기 한국인성교육협회 교육위원
풀 베며 떠오른 부모님 생각 자부심ㆍ회한 등
가슴 속 몰려와 뿌리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

 지난 휴일 벌초를 다녀왔다. 아침 이슬 머금은 자줏빛 억새꽃이 햇살에 반짝이며 일렁거리는 풍광이 마치 영화 ‘붉은 수수밭‘을 연상케 해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맘때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절대 풍경이다. 창녕의 화왕산이나 신불산처럼 거대한 억새꽃 향연은 아니어도 가을 문턱에 우리 주변 야산에서 쉬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길을 나서지 않는 이는 결코 맛볼 수 없다. 흔히 억새 하면 은빛 물결로 표현하지만, 억새꽃 진면목을 모르는 말씀. 은빛 물결은 자주색 고운 억새꽃이 다 지고 난 다음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억새꽃 제맛에 빠지려면 벌초 길에 나설 일이다.

 개인적으로 근 삼백 년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 땅을 떠나지 못한 탓에 해마다 음력 8월 첫 주면 어김없이 문중 최대 행사로 손꼽히는 벌초 행렬에 동참한다. 덕분에 가을 초입 무르익은 산천의 멋을 누구보다 제대로 느낄 수 있어 행운이라 여긴다. 다들 각지에 흩어져 바삐 살다 금쪽같이 귀한 시간 내어 모인 일족 간 오가는 정담과 세상 사는 이야기는 아직도 따사로운 햇살만큼이나 진한 정을 영글어낸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서툰 예초기 솜씨지만, 산소에 무성해진 풀을 정성껏 베어내고 갈퀴로 마무리한 뒤 술 한 잔 올리고 나면 수북해진 내 머리를 자른 듯 시원해진다. 벌초에 집중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고 팔과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는 묘한 짜릿함은 ‘마더 테레사‘효과 같은 행복감을 안겨주는 듯하다. 벌초 때의 느낌은 명절이나 제사 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오로지 육체적인 노고를 거쳐야만 맛볼 수 있는 감정이입은 마치 등산의 인문학적 가치와 흡사하다. 벌초하는 내내 머릿속엔 대하소설 같은 부모님의 인생극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분들과 함께했던 삶의 궤적들이 떠오르면서 문득 지난날의 내 모습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역사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성찰한다고 했듯 부모님 생각을 통해 내 인생의 근원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 소중한 순간이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지난날 감추고 싶었던 자화상이 오히려 자부심이 돼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고, 때론 자랑스럽게 여겼던 일들이 혹여 오만과 독선으로 표출된 건 아니었을까 하는 회한과 소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삶은 어떻게 살 것인지, 또한 삶의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현듯 생각이 미쳤다. 젊은 시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쉰 고개 넘을 무렵부터 불쑥불쑥 드러나는 건 왜일까. 문득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이 있다는 사마천의 폐부를 찌르는 삶의 철학, 삶이 죽음을 결정한다는 명제를 곱씹어 본다. 죽음은 찰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압축된 한 장의 이미지 컷과 같은 것이다. 죽음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삶은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되며, 이는 곧 죽음의 가치를 판가름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여 진 삶의 선택, 아니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를 잠시나마 생각해 본 것도 벌초를 통해 얻은 값진 선물이다.

 한국인의 삶에 있어서‘벌초 하는 날‘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본다. 유교 전통에 따른 단순한 효의 개념으로만 보아도 큰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인문학적 측면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만의 장묘문화에 따른 풍속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조상에 대한 후손의 도리라는 유교전통에 따른 의무론적인 입장과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위안이 되고, 뭔가 모를 특별한 감정이 싹트는, 그래서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일종의 생태론적 입장으로도 접근해 볼 수 있다. 인성 교육은 이렇듯 우리의 작은 삶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