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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입은 상처가 눈에 보일 때
말로 입은 상처가 눈에 보일 때
  • 김혜란
  • 승인 2015.09.09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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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가끔 꿈을 꾼다. 내가 방송을 통해 말했던 모든 종류의 말들이 전파를 타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주공간 어딘가에 머문다. 한순간 우주의 기운이 바뀌고 중력의 작용이 바뀌며 그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말들이 내게로 쏟아지는 꿈이다. 누군가를 위로해준 말은 내게도 위로를 줄 것이지만 때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폭력적인 말을 했다면 그 말은 내게도 폭력으로, 상처로 쏟아지리라.

 만일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나 충격이 어느 순간부터 몸에 입은 상처처럼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 현대인의 모습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기 두렵다. 아마 상처투성이의 인간들이 강시처럼 길 위를 절룩거리며 떠다닐 것이다. 하드 고어 종류의 영화를 따로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비명을 토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완전히 전쟁터, 6ㆍ25때 겪은 난리는 정말 난리도 아닐 것이다. 매초마다 피 터지고 멍들고 쓰러지는 아수라장일 것이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더 아픈 마음의 상처도 생기겠구나….

 어쩌면 우리는 말로 주고받는 상처가 보이지 않아서 이 정도로 생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개인이 말로 인해 받은 상처에 밤마다 쓰디쓴 술을 부으며 스스로 소독하고 위로할 것이다. 아니면 그 상처를 둘러앉아 내보이면서 서로 따뜻한 말로써 핥아 주고, 상처 입힌 자를 향해 또 말로 복수의 칼날을 휘두른다. 상대는 자신도 모르는 상처가 밤새 막 생기고 있겠지. 다음날, 자신이 입힌 상처 때문에 돌아온 폭력적인 말들은 암이 되거나 곪아 터지는지도 모르고 또 자신의 목표를 위해 누군가를 힐난하고 질책하며 상처를 낼 것이다.

 영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처럼 맷집 좋은 언니들이 나타나서 스스로 그 상처를 꿰매고 남들의 상처를 치료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샤를리즈테론처럼 맞고도 끄떡없는 맷집으로 약한 사람들을 구하면서 말이다.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도 나타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인류가 멸망했는데도 살아남은 희한한 캐릭터가 있었다. 화염방사기 역할을 겸하는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두프 워리어’다. 그는 시종일관 헤비메탈을 연주하며 전사들의 피를 솟게 만든다. 탑처럼 쌓인 스피커 앞에서 줄에 매달려 기타를 연주해야 하는 두프 워리어는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사막을 달리면서 싸우는 영화 속에 맹인 기타리스트의 출연은 무엇을 의미할까.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살아남은 유일한 비책이었다.

 일상에서 쓰는 말들이 얼마나 위험한 살상용 무기인지 몇 가지만 점검해보자. 군사정권이 낳은 폐해인지, 명령조의 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투가 심지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조용히 하세요!’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다. 훅하고 어퍼컷이 들어간다. 그게 뭐 상처 입힐 말이냐고 물을 것이다. 당연히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말투다. ‘조금 소리를 낮춰 주면 고맙겠습니다’가 그나마 덜 폭력적이다. 관공서나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말하면 상대방이 외친다. ‘큰 소리로 말하세요’ 가슴팍에 멍이 든다. 상처가 되지 않으려면 ‘소음 때문에 못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크게 말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해야 그나마 괜찮다.

 경상도 사람들은 말이 짧다. 우스갯소리로도 말한다. ‘할머니, 그러시면 안돼요’를 세 글자로 줄여보라고. ‘할매 쫌’이다. 할머니한테 반말로 나무라는 표현이다. 할머니의 상처가 눈에 보인다면 손주의 말에 상처 입고 피 흘리고 계시지 않을까?

 욕설을 일상용어로 쓰는 사람도 있다. ‘씨부X’, ‘니미X’ 등등을 아예 감탄사 취급하며 쓰기도 한다. 이런 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지 주지 않는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런 말을 쏟아내면서 해소하려는 것이겠지만, 듣는 사람은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라도 상처 입는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런 말을 쏟아내는 본인도 자신이 내뱉는 말을 자신의 귀로도 듣고 있기 때문에 이미 상처가 돼 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말을 하고 앞에 앉은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면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있다. 이것이 지옥이 아니면 어디가 지옥일까.

 우리 사는 세상은 폭력적이지 않은 말을 가려 쓰는 일만으로도 천국을 만들 수 있다. 언어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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