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50대 초반의 한 선배가 ‘솔개의 인생 후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솔개는 80년까지 살 수 있는데 40년을 살고 나면 부리가 꾸부러지고 발톱은 너덜너덜해진다. 또 깃털이 무거워져 더는 날 수 없게 되면서 더는 사냥을 못 하게 된 솔개는 그냥 그대로 죽든지, 아니면 바위산으로 올라가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다고 한다. 바위산에 올라간 늙은 솔개는 꾸부러진 부리를 돌에 갈아 뾰족하게 만들고 새 발톱이 나도록 너덜너덜해진 발톱을 다 뽑는다. 이어 날카로워진 부리로 깃털을 다 뽑고 나면 가벼운 새 깃털이 다시 나오게 되는데 이 기간이 138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한 선배는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결심한 솔개가 40년을 더 살기 위해 고행의 길을 나선 것처럼 내년에 퇴직하시는 선배님께서 남은 기간 잘 준비하시어 멋진 인생 후반을 설계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건배 제의사를 대신했다. 술잔을 내리면서 “평균수명이 길어져 여기 계신 선배님들 모두 100세 넘게 사시리라 봅니다. 선배님들께서는 지금이 인생의 반환점이라 생각합니다”라는 덕담도 곁들인다.
솔개의 수명을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어 지금은 선배의 솔개 이야기가 우화에 가깝다는 의견이 대세다. ‘솔개의 인생 후반전’ 이야기가 사실이든 우화든 관계없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있어 보인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수명 탓에 인생 후반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60대에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던 우리의 부모 세대와 달리 요즘은 60대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니 자녀 세대들의 인생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솔개 이야기를 다 듣고 술잔을 기울인 그 날의 주인공 선배께서 멋진 화답을 하셨다. 수전노(守錢奴)의 어원을 화두로 잡은 선배는 “돈을 모을 줄만 알아 한번 손에 들어간 것은 도무지 쓰지 않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수전노인데 한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守는 지킨다는 의미, 錢은 돈이고, 奴는 노예. 돈을 지키는 노예가 수전노다”고 풀이했다. 이어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그 돈의 노예로 살아서 되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돈에 집착하면 추해진다”면서 “우리도 남은 인생을 베풀면서 건강하게 살자”고 제안하셨다.
수전노 이야기를 서두로 잡으신 선배는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 회장이 60이나 70세에 은퇴하면서 후계구도를 미리 잡았다면 지금의 시련은 없었을 것이다”며 “늙어가면서 노욕은 금물이다”는 말로 후배들에게 전하는 교훈을 마무리하셨다.
신발이 닳는 게 아까워 구두에 쇠를 박았다는데서 유래된 구두쇠와 유사하게 사용되는 수전노는 프랑스 고전주의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L’Avare)으로 ‘파리에서 이름난 알부자 아르파공은 세상에 둘도 없는 구두쇠로 아들 클레앙트와 딸 엘리즈가 있는데 딸은 돈 많은 앙셀므 영감과 아들은 돈 많은 과부와 결혼시키려 하자 남매는 아버지 때문에 사랑에 지장이 많다고 한탄한다. 엘리즈는 발레를 사랑하고 클레앙트는 젊고 아름다운 마리안을 사랑한다. 그런데 아르파공은 적게 먹는다는 이유로 마리안과 결혼하려 한다. 어느 날 아르파공이 땅에 묻어둔 돈을 하인인 라 플레슈가 훔친다. 아르파공은 돈을 잃어버려 죽을 결심을 하지만 이때 발레르가 앙셀므 영감의 잃어버렸던 아들임이 밝혀진다. 아르파공은 라 플레슈에게 돈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남매의 혼사를 허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솔개와 수전노 이야기가 인생 후반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대로 멈추지 말고 솔개가 부리를 갈고 발톱과 깃털을 뽑아 다시 창공을 날 듯 나도 내 인생 후반부를 멋지게 살 준비를 더 가열차게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또 돈을 벌지만, 그 돈을 지키는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나와 주위 사람을 위해 쓸 돈은 쓰면서 후덕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