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1:24 (목)
새로 꾸는 통일 꿈
새로 꾸는 통일 꿈
  • 김혜란
  • 승인 2015.09.02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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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시인이 말하는 금강산은 달랐다. 2008년까지 북녘땅에 여러 번 다녀온 김유철 시인은 금강산 이야기를 무슨 판타지 소설처럼 이야기했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에서 매주 월요인문학당을 열고 있다. 진행자로 벌써 8회째를 넘겼다. 지난 월요일의 주인공은 북녘땅이었는데, 북녘땅 이야기가 왜 인문학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칼날이 목에 닿는듯 하면, 그것은 인문학이 틀림없다고….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하기까지한 시인의 북녘 이야기를 다 소개하자면 길어질 것이다. 두 시간 반가량을 변소나 위생소도 다녀오지 않고 쉼 없이 이야기했다. 함경도가 고향인 아버님 덕분인지 아버지 고향말을 섞어서 이야기 중간중간 배우처럼 연기했다. 연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시인의 아버님과 북녘땅에서 스치듯 만나 대화를 나눴던 몇 안되는 북녘사람들이 다 같이 서 있었다. 영화를 보는듯 했다.

 금강산은 불교의 화엄경에서 유래된 산 이름이고 최고봉은 비로봉이다. 일만이천 봉을 이고 선 그 산은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만 봐도 장관이었다. 십 년도 지난 시절의 관람기였지만 감동이 컸다. 그 까닭은 시인의 말발 내공도 컸겠지만, 금강산을 보고 싶은 남녘땅 사람들의 그리움이 양념으로 섞였기 때문이리라. 고향이 북녘도 아니고, 두고 온 형제부모도 없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늙는구나….

 사실 경관과 풍광을 아무리 확인한다고 해도 더 중요한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일 것이다. 막 귀가하자마자 고려관광 승무원들의 패션이 바뀌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어쩐지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을 올라 장군봉을 배경삼아, 나도 사진 한 장 남길 것 같은 희망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갑장인 북녘여성과 어깨동무하고, 짧아도 좋으니 이야기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의 마지막 한마디가 여운으로 남는다. “Man makes himself.”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소는 금강산 면회소가 유력하다고 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자 접촉이 판문점에서 열리고 실제 상봉행사는 다음 달 초 중순께는 열릴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추진센터’도 가동을 시작했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6만여 명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여부와 명단 교환을 북측에 요구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센터에는 100대의 전화기가 설치됐고, 배치된 상담 요원들은 이산가족 6만여 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건강상태, 북측 가족과 생사 확인을 위한 명단 교환에 동의하는지를 묻고 있다.

 시인은 통일을 생각하며 돌아가신 아버님의 향수와 시적 감수성을 섞어서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꿈꾸게 했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만나서 현실적으로 덜 부대끼려면 소통의 지름길을 미리 찾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이해 못한다며 육십대 노부부는 무덤덤하게 헤어진다. 십대는 따돌림과 빡센 학업의 공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죽음을 선택한다. 북녘 젊은이들이 부러워하는 자본주의 남녘땅의 청년들은 하늘의 별 따기인 취업과 경제적 부담에, 노인들은 혼자 있는 외로움에 스스로 죽음을 넘겨다 본다. 하물며 체제 다르게 반백 년 넘게 살아온 남북 사람들이 무조건 하나 된다고 절대도 한결같이 ‘일없어’ 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간 소통의 어려움을 넘어설 비책은 무엇일까. 감히 말하는데, 시나브로 젖어들 문화의 교류라고 확신한다. 현실적으로 공통분모가 분명히 있었던 전통음악만 해도 남과 북의 접근법이 긴 세월 동안 많이 달라졌다. 춤과 노래발성법조차 서로 다르고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함께 통하고 즐길 수 있는 분야는 여전히 문화활동이고 예술활동이다. 북의 대동강변에서 남북주민들이 섞여 난타를 두드리고 발레리나와 힙합전사가 춤추면 어떨까. 한강변에서 대중가요 콘서트를 남북의 가수들이 함께 열고, 시인들이 모여 창작시를 읊으면 어떨까. 남북작가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인터넷상에서 같은 주제로 공동소설을 쓰는 것은 또 어떨까.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서로 약속을 이행하자고 다짐하니, 이번만큼은 통일 꿈을 차근차근 쌓기 시작할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설마, 또 “나 꿍꼬또, 기싱 꽁꼬또!” 하지 않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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