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9:33 (금)
비의 노래
비의 노래
  • 정창훈
  • 승인 2015.08.26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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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체들은 수분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충분한 수분을 보충해야만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고 이러한 수분의 필요성을 보충해주고 있는 비는 모든 생명들에게 없어선 안 되는 존재다.

 비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물이 증발해 공기 중의 수증기로 변하고 그리고 수증기를 포함한 공기가 위로 갈수록 온도가 낮아져 수증기가 응결해 구름이 된다. 위의 과정들을 여러 번 거치다 보면 구름 속의 작은 물방울들이 커지는데 무거워진 구름 속의 물방울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비라고 한다. 비가 내려 물이 잘 통하는 흙이 있는 곳에 떨어지면 지하수가 되기도 한다.

 비는 내리는 형태 ㆍ계절 ㆍ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오랫동안 내렸다 그쳤다 하면서 계속되는 일련의 비를 장마라고 하며, 6월 말경부터 7월 사이에 나타난다.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릴 경우를 호우라고 하며, 이것이 지형적인 영향으로 어느 곳에 집중될 경우에는 집중호우라고 한다. 흔히 여름철에 국지적으로 단시간에 굵은 빗방울을 동반하는 비가 소나기다.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는 비인 뇌우를 비롯해 안개비, 가랑비, 여우비, 장대비, 산성비 등 많은 종류의 비가 있다.

 계절에 따라 비는 봄비, 가을비, 겨울비로 나누지만 ‘장마’라고 할지언정 ‘여름비’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여름에 내리는 비는 너무 흔한데다 민폐가 커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정서적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데 폐해만 잠시 접어둔다면, 비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여름비만큼 빠져들게 하는 게 없다. 온 우주공간을 채우듯 줄기찬 기세로 내리는 여름 빗줄기는 도무지 이 세상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봄비는 단비라고 한다.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봄비, 밤새 내린 봄비는 싱그러움을 더한 풀잎에 영롱한 물방울이 맺혀있다. 영롱한 물방울은 밤 가로등 불빛에 밝게 웃고 있다. 사랑 가득한 생명을 주는 선물이 봄비다. 가뭄을 해결하고 겨울을 힘겹게 이겨낸 대단한 녀석들에게 봄비와의 만남은 설렘이다.

 가을비는 그리움이다. 특별히 늦가을에 내리는 가을비는 추위를 힘겹게 넘겨야 하는 서민과 가을추수에 바쁜 농부에게 힘든 농사일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환영받지는 못하지만 겨울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가을비는 못다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겨울비는 가슴시림이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란 노래로 설명할 수 있다. 고온 건조한 양쯔강기단의 지배로 내리는 봄비는 포근함이고 설렘이지만, 한랭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 지배로 겨울을 재촉하는 겨울비는 차갑고 날카로우면서 기온을 더욱 떨어뜨린다.

 비 오는 날의 추억이 있다. 창밖에 주룩주룩 내리는 빗물을 하염없이 보다가 그 옛날 초가집 처마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은 논밭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놀 수 있어 좋았다. 비가 와서 일을 할 수 없어 감자나 옥수수를 구워 먹고 책도 읽을 수 있는 날이다.

 그때 기억인지 성장하면서 여전히 비 오는 날은 기분 좋은 날이 되고 있다. 비 오는 날엔 가슴에 담아 둔 슬픔과 고통이 빗줄기를 타고 흠뻑 젖은 세상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같다. 아마 모든 것을 포용하는 거대한 바다가 그 목적지가 될 것 같은 희망처럼 장마가 시작되면 불어난 개울에 종이배 띄우고 떠내려가는 종이배를 따라 뛰어갔다가 배가 가라앉으면 되돌아와 다시 띄우기를 반복하며 수수깡으로 물레방아 만들어 논물고랑에서 물방아를 돌리기도 했다.

 비 내리는 여름날 비릿한 흙냄새, 비 냄새가 집안에 번질 때면 시골집 마루에서 동생이랑 몇 시간 동안 멍하니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곤 했다. 이불을 마루에 깔고 그리고 턱을 괴고 천둥이나 번개가 내리치면 무서워서 이불 속에 숨기도 했다.

 비 오는 날 평소에 보지 못했던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두꺼비가 마당에 나타나면 집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두꺼비가 지혜와 풍요를 상징한다는 것은 몰랐지만 우리 집에 좋은 일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나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도 가슴 한곳에 푸른 숲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다. 조금 서툴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풀어 갈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비는 마음의 거리를 지워준다. 사람에 서툰 사람도 비에 취하면 이내 마음을 연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비를 좋아한다고 하면 쉽게 마음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 햇볕은 대지를 밝게 한다. 비는 세상에 생명수를 뿌려주고 바람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준다. 눈이 내리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이 세상에 나쁘고 필요 없는 계절과 날씨는 어디에도 없다.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도 멋진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사랑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생명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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