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4:30 (화)
가야 고분군에 올라
가야 고분군에 올라
  • 김혜란
  • 승인 2015.08.26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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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요즘 무덤 생각을 매일 한다. 천오백 년도 넘은 가야시대 고분군이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후, 정식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선정되기 위해 해당 지자체와 민간사업단들이 여러 가지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민간사업단이 진행하는 교육을 맡았기 때문이다.

 현재 유네스코 목록에 등재되기를 기다리는 가야의 고분군은 세 곳이다. 아라가야인 함안 말이산고분군과 금관가야 김해 대성동고분군, 대가야인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이다. 안라국, 혹은 아라가야의 영토였던 함안은 전기가야에서 빛났던 김해와 후기가야에서의 고령과는 다르게 뒤늦었지만 가야의 전 시기에 걸쳐 지속적인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다.

 함안군청 뒤편 구릉에 고분이 있다. 말이산고분군으로 불리는 아라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조성 시기는 서기 1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기까지 걸쳐있다. 무덤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고분은 37기이지만 오랜 세월에 풍화와 침식으로 원형을 잃은 것을 포함하면 1천여 기 정도 된다. 불꽃무늬토기와 수레바퀴모양토기, 말투구, 말갑옷 등 다양한 철기들이 유명한데 특히 불꽃무늬토기가 많이 나온 지역은 함안과 주변 지역인 창원ㆍ마산ㆍ의령ㆍ진주 등 서부경남 일대이고 멀리는 경북 김천ㆍ경남 거창ㆍ경북 경주ㆍ부산, 일본의 긴키(近畿) 지역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당시 활발히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김해 대성동고분군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龜旨峰)과 김해패총(金海貝塚)으로 유명한 회현리 패총의 한가운데에 있다. 동쪽에는 김수로왕릉이 있는데 금관가야 지배자집단의 공동묘역으로 판명됐다. 입지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는 왕의 묘와 지배자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의 무덤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고분 속 유물과 함께 한국 고대사에서 공백으로 남은 4세기 전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김해시는 꽤 오랫동안 가야를 삼국과 함께 어깨를 겨루는 제4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가야문화제 등 많은 작업을 해 온 상태여서 대성동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다면 그 보람과 가치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대가야의 왕도인 고령읍 주산(主山) 능선 위에 700여 기 이상의 무덤이 조성돼 있다. 대가야의 왕과 왕족을 비롯한 귀족층 등 최고지배층의 무덤이다. 이 고분군은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서기 400년을 전후해 조성돼 신라에 멸망당할 때까지 대략 160여 년간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1년에 평균 4∼5기의 고분이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봉분이 남아있지 않는 경우까지를 친다면 수만 기에 달한다. 단위 고분군에서 700여 기라는 엄청난 숫자의 고분이 한 세기 반이라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에서도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그동안 약 1500년 전 존재했던 고대국가 가야 문명을 실증적으로 증명할 증거가 많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 가야문명에 대한 발굴 작업과 역사적 가치에 대한 증명작업들이 활발히 전개됐다. 이렇게 최근에 이뤄진 작업들은 고분군 자체가 가야라는 고대문명의 실증적 증거가 됐고, 고분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큰 힘을 더할 것이다. 또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여러 고대국가들의 발전 단계와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역사ㆍ문화적 가치가 매우 클 것이라고 본다.

 학자들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야연맹체이건, 가야국이건 큰 상관없다. 도시국가로 보면 큰일이라도 날까. 흩어져 있지만 매력적인 가야 고분군을 세계인의 감탄사가 나오게 할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당 지자체들의 협력이 최대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되는 일은 녹록치 않을뿐더러 공동작업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해당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유네스코 심사관이라면 화려하게 이뤄내는 이벤트성 홍보잔치보다는 주민들에게 질문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자부심어린 가야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 점수를 더 줄 것 같다. 동네 뒷산이고 마구 뛰어놀던 ‘산만디’였던 고분군이 세계에서도 인정한 문화유산임을 자긍심으로 살아나게 하는 일이 우선이다.

 경남과 경북 해당 지자체와 학계, 민간인을 모아 유네스코 등재 관련 태스크 포스팀을 만들자. 그리고 고분군 관련 가야문화의 모든 자료와 생각들을 모으자. 어르신의 구전이야기와 아이들의 해맑은 상상력까지 모두 필요하다. 그 토대위에 우리만의 가야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피라미드 이상 가는 문화유산의 역사도 쓸 수 있다.

 역사탐구 작업은 창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고분군 능선에 올라 녹슨 말갑옷 조각, 불꽃무늬 토기를 보며 방대한 시간을 거슬러 고대 문화를 떠올리는 일은 그야말로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시작하는 일이 아닌가. 머리를 맞대고 상상력과 창조력을 모으는 작업이 지금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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