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3:00 (금)
사해(死海)
사해(死海)
  • 이광수
  • 승인 2015.08.23 2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광수 소설가
이상기온ㆍ밀식 양식 병든 바다 치적쌓기 등 행정변화 절실

 연례행사처럼 올해도 남해안에 적조가 밀어 닥쳤다. 동해안까지 밀고 올라가는 적조방제를 위해 황토를 뿌려 보지만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이다.

 죽은 물고기는 마릿수를 세어 보상을 해 준다는데 어이가 없다. 적조피해보험은 왜 없을까. 농작물은 재해보험에 가입해 보험으로 처리하고 있지 않는가.

 갯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물밑이 어둡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긍정적인 의미는 바다의 풍부한 어족자원이 엄청난 부를 가져다준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부정적인 의미는 온갖 꼼수가 난무하는 수산비리의 온상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는 말이다. 그것은 어업 관련 부조리가 만연되면서 막대한 국고가 낭비되고 있는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다.

 규정 이상의 밀식 양식으로 바다 밑이 양식부산물의 침적으로 썩어가고 낚시꾼들의 비양심적인 신선놀음과 축산폐수 등의 무단방류로 연안바다가 병들어 가고 있다. 적조발생의 큰 원인은 기후변화이지만 앞서 언급한 내용과 공장 공해물질의 방류가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고향 인근 청정바다를 구경 갔다. 공룡발자국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그곳 역시 관광객도 없는 썰렁한 해안가에 스티로폼 쓰레기가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관리소가 있는 모양인데 방송소리만 요란할 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한심한 공복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일 리 만무하다. 해안가를 따라 가로수라도 식재했다면 한더위 산책하기에 얼마나 좋겠는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윗사람 눈치나 보고 시키는 일만 하고 있으니 무슨 현장행정이 되겠는가. 우리나라 관광지 곳곳을 다녀보면 마찬가지다. 시설만 해 놓고 사후관리는 뒷전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내해가 호수처럼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다.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는 온갖 먹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해 줬다. 그러나 고향을 등진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곳은 공해로 찌든 사해로 변하고 말았다. 중형조선소가 두 개나 들어서서 맑고 푸르던 호수 같은 바다는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됐다. 맹한 공복들은 물 나들이가 느리고 정체된 내해에 공해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조선소를 허가 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열악한 지방세수 증대를 위한 자구책이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공해업종을 허가할 곳과 안 해야 할 곳 정도는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게 아닌가.

 바다 밑에 지천으로 자생하던 바지락, 굴, 꼬막, 파래 등은 독성 페인트 가루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모두 폐사했다. 가끔 찾는 고향바다가 탁한 색깔의 사해로 변한 것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민선 지자체장들은 자기 재직 시 치적쌓기 생색만 내고 떠나고 나면 그만이다. 다시 찾고 싶은 고향바다가 아니라 가기 싫은 고향 바다로 변했다는 게 너무나 서글프고 안타깝다. 죽음의 바다를 다시 살리지 않으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적조방제에 황토만 뿌릴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