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國船(귀국선)
歸國船(귀국선)
  • 송종복
  • 승인 2015.08.19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歸:귀 - 돌아가다 :국 - 나라 船:선 - 배

 일제에게 빼앗긴 국권을 1945년 8월 15일에 되찾았다. 그 동안 나라 잃고 외국에서 노동자, 밀항자, 일용직, 장사꾼으로 전전하다가 타고 온 선박이 귀국선이다.

 광복 후 일본, 중국 및 먼 남방에서 돌아오는 귀국동포들의 감격을 표현한 노랫말이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이 노랫말은 부산 부두에서 귀국선의 모습을 보고 손노원이 직접 작사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찾아오자 일본에 끌려갔거나, 또는 살길을 찾아갔던 수많은 동포들이 고국 땅으로 돌아왔다. 이번 광복 70주년을 맞아 진해의 해군함정(1천300t)을 빌려 시민 250명과 전문배우 10명을 태워 대역을 했다. 우렁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귀국선이 입항하자, 수많은 환영객이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 정말 장관이었다. 산천도 울었고 초목도 울었다.

 화려한 귀국이었지만 그들은 애환이 맺혔다. 일본에 건너가 노무자로, 밀항자로, 일용직노동자로, 길거리 상인으로 지냈다. 이때 귀국선 담당은 UN군 소속의 뉴질랜드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귀국선에 타려는 사람들의 돈과 물건의 양을 제한했다. 귀국선을 타고 부산으로 일부는 북한으로 갔다. 귀국선을 타지 못한 사람들은 시모노세키의 ‘똥굴동네’에 움막을 짓고 내일을 기다렸다. 그때 귀국선을 못 타고 남은 동포들은 오늘날 재일동포들이다.

 패전한 일본은 식민지의 식량수입이 없자 살기가 어려웠고, 재일동포의 생활보호와 치안유지에 골머리가 아파서 귀국을 종용했다. 이 틈을 타서 1959년 북한에 9만 명을 북송했다. 이때 남한은 재일동포의 북송반대에 총궐기했다. 필자도 학창시절에 악대(樂隊)를 앞세우고 ‘재일동포 북송결사반대’란 현수막을 장대에 높이 들고, 또는 어깨에, 이마에 두르고 행군한 적이 있다. 현 북한의 김정은을 낳은 고영희(당시 10세)도 아버지 고경택의 손을 잡고 1962년에 귀국선(만경봉호)에 올랐던 것이다.

 일인은 본국에 돌아가자 살기가 딱해 처자식을 조를 짜서 미군에게 양공주로 팔아 뒷 꽁무니에서 연명하다가 한국의 6ㆍ25전쟁이 군수물자로 살아왔다. 그 후 전자제품생산으로 일약 부국이 되더니 요즘은 세계대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차제에 우리는 광복, 광복만 외치지 말고 귀국선을 귀감삼아 대한민국의 大韓이 大國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