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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을 빛낸 기생
일제강점기, 조선을 빛낸 기생
  • 송종복
  • 승인 2015.08.17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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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ㆍ회장
 조선시대에는 기생을 관장하던 기생청과 교방청(敎坊廳)이 있었다. 그런데 1905년부터 일제는 官妓를 폐지시키고, 그 대신 권번(券番)을 두어 기생을 교육시켰다. 이즈음 일반 백성이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마침 기생은 쉽게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수준이 상당했다. 권번에서는 ‘교양학습’, ‘기예학습’, ‘일본어학습’을 주로 했다. 교양학습은 걸음걸이부터 인사하는 법, 앉는 법, 말하는 법, 옷 입는 법 등 예의범절을 배운다. 기예학습은 노래ㆍ춤ㆍ악기로 나눠 학습을 하고, 소리는 시조ㆍ단가ㆍ진양조ㆍ판소리의 단계를 배운다. 일본어학습은 한글과 일본어를 배운다.

 일제하의 권번에서 교육받은 기생들의 모임을 광교조합(廣橋組合)이라 한다. 광교조합은 남편이 있는 기생 즉 유부기생(有夫妓生)으로 조직됐으며, 뒤에 한성권번(漢城券番)이라고 개칭했다. 서울에는 한성ㆍ대동ㆍ한남ㆍ조선의 권번이 있고, 지방에는 평양, 부산, 대구, 광주, 남원, 개성, 함흥, 진주 등에 각각 권번이 있었다. 특히 기생조합에서 최초의 여성잡지 ‘장한’을 편집했다. 필진은 1급 기생으로 김월선(金月仙, 대정권번), 전난홍(全蘭紅, 대정권번), 김녹주(金綠珠, 한남권번), 전산옥(全山玉, 한성권번), 이월향(李月香, 대정권번), 박녹주(朴綠株, 한남권번), 김계화(金桂花, 광주권번), 윤옥향(尹玉香, 한남권번) 등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빛낸 명기를 언급해보면, 현매홍, 김옥엽, 오산월, 김영월. 윤채선. 이옥란, 장연홍 등이다. 이 중 현매홍과 김옥엽은 평양권번 출신으로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도 적을 두고 활동했다. 현매홍은 가곡, 가사, 시조에 능통했고, 김옥엽은 궁중무용, 서도잡가, 경기잡가에 뛰어나 빅타, 콜럼비아, 태평 레코드 등에 음반을 취입했다.

 오산월은 명월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특히 김산월은 ‘배따라기’ 같은 민요와 ‘장한몽’ 같은 가요를 많이 불렀다. 또한 도월색과 ‘희망가’인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나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불렸다. 김영월은 평양의 기성권번에서 학습을 해 소리에 능통했으며, 연기 쪽에서도 일찍부터 소질을 있어 많은 활동을 한 기생이었다. 1927년 개봉한 영화 ‘낙양의 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윤채선은 요즘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현대적인 미모를 가지고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여인이다. 그는 대정권번 소속의 예술기생으로 특히 조선무용에 능통했다. 이옥란은 소박하면서도 애수에 넘치는 목소리를 지녔다. 그는 한성권번에 적을 두고 국악과 양악 양쪽을 오가며 활동했다. 특히 콜럼비아 레코드에 취입한 가요곡으로 ‘기생수첩’, ‘눈물의 시집’ , ‘꽃 같은 순정’ 등의 노래로 대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았다.

 장연홍은 일제강점기에 최고의 ‘얼짱’ ‘몸짱’이라고 평가받으며 인기가 대단했다. 그는 평양기생으로 예능계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반면에 의식기생, 사상기생에 가까운 활동을 했으며, 중국에 유학까지 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문화가 침투해 우리의 문화가 암울할 때, 내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데 기생들도 한몫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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