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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나누다
희망을 나누다
  • 김은아
  • 승인 2015.08.10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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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
 길고 흰 손을 내미는 소년의 얼굴이 맑은 하늘을 닮았다. 산청 경호강 래프팅을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날이다. 버스에 올라 잠시 서먹함을 뒤로 하고 제 짝을 찾은 봉사자들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조카를 본 듯 스스럼없이 그들과 어울렸다. 아무도 장애인들을 다르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짜릿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오늘 하루를 함께 보낼 내 짝꿍은 민재는 부모님과 예쁜 여동생을 둔 이제 갓 소년의 티를 벗은 스무 살 청년이다. 약간 어눌한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고, 부자연스러운 걸음에 살짝 손을 잡아주어야 하지만 여느 평범한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어쩜 더 배려 많은 싹싹한 청년이다. 간식이 나오면 먼저 먹어라 권하고 열기 힘든 음료수 뚜껑을 열어 주면 꼭 감사하다 인사를 한다.

 내가 “희망나누미클럽”을 알게 것은 불과 1년이 되지 않는다. 2008년 3월 김해지역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만든 단체로 지금은 회원 400여 명이 장애인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봉사자들은 장애인들이 자기주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평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꽤 오랜 기간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래프팅은 10회를 맞이하고 있다.

 5대의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 경호강에 도착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빈공터는 금세 메워졌다. 장애인 100여 명과 함께 봉사자 100여 명, 일대일 짝꿍이 돼 오늘 하루를 서로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들과 짝꿍인 명석 씨는 서른다섯 살 청년이다. 그는 항상 옆에 보호자가 필요했다. 아들은 한시도 명석 씨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요즘 아이 같지 않은 아들의 배려심에 잠시 감동했다.

 간단한 오락으로 서로를 향해 웃으며 긴장된 마음을 풀었다.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각자 몸에 맞는 조끼를 챙겨 입고 손에 노를 하나씩 들었다. 10명씩 조를 이뤄 커다란 고무보트를 들고 강으로 향했다. 민재는 힘든 걸음에도 보트의 한 귀퉁이를 잡아서 무거운 보트 들기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강가에 도착해 배에 오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힘든 걸음으로 강가까지 따라온 명석 씨가 혼자 힘으로 보트에 탈 수가 없었다. 모두의 힘을 모아 태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혹시 배를 타고 가다가 위험한 일이 있을 때 대비가 가능할까 모두들 고민에 빠졌다. 인솔 담당자가 명석 씨를 태우지 않기로 결정하니 아들과 명석 씨의 얼굴빛이 어둡다.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고 보트에 오르려는데 명석 씨가 되돌아 왔다.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여기 온 목적을 잠시 잊고 있었던 모두가 박수를 치며 그를 맞았다.

 장기간 비가 오지 않아 유속이 없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이 됐다. 아들은 명석 씨의 구명조끼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머리에 헬멧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제 옆 중앙에 명석 씨를 앉힌 아들은 가는 내내 명석 씨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경호강을 가득 채운 스무 척의 고무보트가 강물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유속이 빠르지 않아 노를 저어가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급한 물살을 만나기도 하고 얕은수심에 보트가 바위에 걸리기도 했지만 재미있게 래프팅을 즐겼다. 가끔 옆 보트와의 물싸움에 가운데 앉은 명석 씨가 제일 많이 물세례 받게 됐지만 아들의 손이 명석 씨의 얼굴을 지키고 있었다.

 2시간이 넘는 제법 긴 래프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민재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민재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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