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4:05 (금)
영화로 풀어 보는 인성
영화로 풀어 보는 인성
  • 한중기
  • 승인 2015.08.10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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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기 두류인성교육연구소 소장
과거의 삶과 현재ㆍ미래 보여주는 영상
미디어 속 매개체로 시대정신 보는 거울

 다양한 장르 중에서 영화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미디어도 없을 것 같다. 한 편의 영화에 담겨진 메시지가 시대정신으로 각인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영화는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이야기 하며 또한 미래의 삶을 보여 주는 마법의 거울 같은 존재다. 미디어는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절대 권력자나 마찬가지다. 1980년 처음 방송된 컬러 TV가 한국인의 삶에 혁명을 가져왔다면, 스마트폰은 ‘새로운 차원의 인간’을 만드는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흑백 시대를 거쳐 60년대 마치 혜성처럼 등장한 ‘총천연색 칼라’에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까지 가미된 영화는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때론 웃게 만들면서 임팩트 한 미디어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즘은 거의 안 쓰는 용어가 된 ‘총천연색 칼라 시네마스코프’가 생경한 세대도 있겠지만 중년세대 이상이라면 매우 친숙한, 그리고 아련한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광복과 전쟁, 가난 그리고 산업화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한국인의 정서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 준, 그러면서 우리 인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디어가 영화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잇따라 개봉된 ‘국제시장’과 ‘연평해전’에 이어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이 대세다. 곧 관람객 1천만 명을 돌파할 기세다. 잇따라 개봉된 ‘베테랑’도 피서철 관객 몰이에 성공하면서 한여름 영화 열풍이 뜨겁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경보의 공포감을 떨쳐버릴 겸 지난 주 ‘암살’을 관람했다. 먹먹해진 가슴은 관객들이 다 빠져 나갈 때까지 이어졌고 ‘잊지 말라’는 잔상은 한동안 이어졌다. 영화의 마력이다.

 마침 인성 특강이 예정돼 있어 ‘영화로 풀어보는 인성’으로 주제를 정했다. 영화와 인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사람의 삶을 다루는 매체의 특성도 있겠지만 인성의 어원과 연관시켜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서양에서 주로 ‘퍼스낼리티(Personality)’로 표현되는 인성의 어원은 ‘페르소나(persona)’이다. 고대 로마의 연극배우들이 주인공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데서 비롯된 말인데 요즘 감독과 영화배우의 관계로 종종 차용되고 있다.

 작가나 감독의 내면을 배우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인상 깊은 영화 몇 편이 있다. 다큐형식의 산악영화 ‘터칭 더 보이드’와 ‘굿 윌 헌팅’, ‘아름다운 비행’ 등이 우선 떠오른다. ‘터칭 더 보이드’는 일반 상영은 안 된 영화지만 매우 감동적인 영화다. 경남 출신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의 기적적인 ‘촐라체’ 생환기를 다룬 sbs 스페셜 ‘하얀 블랙홀’과 오버랩 된다. 이 영화는 1985년 남미 페루의 ‘시울라 그란데’를 등정한 두 산악인이 하산하던 중 크레바스에 추락한 ‘자일 파트너’ 인 친구의 자일을 끊은 이야기다. 국내 산악인의 필독서가 됐던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가 원작이다. 당시 세계 산악계에 등반윤리 논란을 일으킨 화제작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자일을 끊으면 친구가 죽고, 끊지 않으면 나도 죽을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진 한 인간의 엄청난 고뇌, 친구의 자일을 끊은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친구는 죽었다’고 믿고 그렇게 생각하는 ‘인지부조화’의 인간심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살아서 돌아오면서 엄청난 반전과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크레바스에 추락한 조 심슨은 닷새 동안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서 돌아온다. 그리고 자일을 끊은 사이먼 예이츠를 오히려 위로하며 감싸 안는 장면은 차라리 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포용, 관용, 용서, 믿음, 사랑 등등 이런 단어로는 모자란다.

 그로부터 20년 후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에서 똑같은 상황에 처해진 박정헌은 그러나 자일을 끊지 않고 끝까지 후배 최강식을 구해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온다. 그들의 감동적인 생환기는 처절한 삶의 욕구와 절대 고독 속의 자기 헌신적 우정과 갈등 등 너무도 인간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긴다.

 우리는 종종 삶의 ‘크레바스’에 빠진 이웃의 끈을 너무도 무책임하고 어이없이 끊어버린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처럼.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여운은 깊은 법이다.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 권의 책이나 드라마, 사람 사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반추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삶에 스며들도록 녹여 내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올 여름 영화 한편 보기’는 역대급 폭염을 이기는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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