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08 (금)
石氷庫(석빙고)
石氷庫(석빙고)
  • 송종복
  • 승인 2015.08.05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石:석 - 돌 氷:빙 - 얼음 庫:고 - 곳집

 얼음을 겨울에 木ㆍ石 빙고에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한다. 1898년부터 전기가 들어오고, 1913년 미국에서 냉장고가 발명되자 석빙고는 사라지고 얼음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은 1876년 독일의 칼 린데가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압축냉장장치를 발명한 후부터다. 그 후 1913년 미국에서 가정용 전기냉장고가 출시됐다. 요즘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어, 얼음이나 냉수를 수시로 먹는다. 그러나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는 여름에 얼음을 어떻게 수급했을까.

 <삼국지위지동이전>의 부여 편에 ‘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모두 얼음을 넣어 장사 지낸다(其死, 夏月皆用氷)’고 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3대 유리왕 때 얼음 창고(氷庫)를 지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지증왕 6년(505)에 얼음의 저장은 빙고전(氷庫典)에서 관리했다. 2010년 충남 연기군 남면 나성리 유적에서 3ㆍ4세기에 사용된 얼음 창고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로보아 현재 발견되는 석빙고보다 천 년 전의 삼국시대부터 얼음 창고가 있어 여름에 사용했다고 본다.

 고려 시대는 얼음 배분제도가 있어 6∼8월 초에 벼슬에서 물러난 공신들에게 얼음을 나눠 줬다. 또한 얼음을 채취할 때는 사한제(司寒祭)를 지내기도 했다. 1244년 최씨정권 때 최고 권력자 최이(崔怡)는 서산 빙고에 얼음을 실어 나르도록 했다. 그 후 1298년 6월부터는 누구나 얼음을 저장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조선 시대는 태조 때 한양에 서빙고(8동)와 동빙고(1동)를 지었다. 서빙고 얼음은 고관에게, 동빙고 얼음은 왕실에 분배했다. 또 창덕궁 안에는 내빙고를 두어 궁궐의 수요를 맡았다. 이 빙고는 예조의 속아문에서 관장했다.

 <경국대전> 예전의 반빙(半氷)조에는 여름철에 얼음을 당상관(정3품)과 70세 이상의 퇴직당상관에게 배분했고, 또한 활인서(병원)의 병자들과 전옥서(감옥)의 죄수들에게도 분급했다. 또한 종친과 대신 및 관아에는 목제 빙표(氷票)를 하사했으며, 이를 갖고 가면 빙표 내용대로 얼음을 분배받는다.

 현존하는 석빙고의 건립년대와 보물번호를 적어보면, 경북의 청도(1713: 323호)ㆍ현풍(1730: 673호)ㆍ안동(1737: 305호)ㆍ경주(1738: 366호)와 경남의 창녕(1742: 310호)ㆍ영산(1742: 1739호)에 있으며, 북한에는 해주석빙고(1735)가 있다. 석빙고를 보면 공기대의 원리, 열전달, 단열효과, 경사빗면의 원리, 태양열의 차단 등 아주 다양한 과학적 방법으로 얼음을 보관하는 石氷庫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국 6기의 석빙고는 모두 낙동강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냉장고의 발명전에 얼음을 실생활에 사용한 것도 조상들의 지혜라고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