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겨울에 木ㆍ石 빙고에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한다. 1898년부터 전기가 들어오고, 1913년 미국에서 냉장고가 발명되자 석빙고는 사라지고 얼음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은 1876년 독일의 칼 린데가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압축냉장장치를 발명한 후부터다. 그 후 1913년 미국에서 가정용 전기냉장고가 출시됐다. 요즘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어, 얼음이나 냉수를 수시로 먹는다. 그러나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는 여름에 얼음을 어떻게 수급했을까.
<삼국지위지동이전>의 부여 편에 ‘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모두 얼음을 넣어 장사 지낸다(其死, 夏月皆用氷)’고 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3대 유리왕 때 얼음 창고(氷庫)를 지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지증왕 6년(505)에 얼음의 저장은 빙고전(氷庫典)에서 관리했다. 2010년 충남 연기군 남면 나성리 유적에서 3ㆍ4세기에 사용된 얼음 창고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로보아 현재 발견되는 석빙고보다 천 년 전의 삼국시대부터 얼음 창고가 있어 여름에 사용했다고 본다.
고려 시대는 얼음 배분제도가 있어 6∼8월 초에 벼슬에서 물러난 공신들에게 얼음을 나눠 줬다. 또한 얼음을 채취할 때는 사한제(司寒祭)를 지내기도 했다. 1244년 최씨정권 때 최고 권력자 최이(崔怡)는 서산 빙고에 얼음을 실어 나르도록 했다. 그 후 1298년 6월부터는 누구나 얼음을 저장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조선 시대는 태조 때 한양에 서빙고(8동)와 동빙고(1동)를 지었다. 서빙고 얼음은 고관에게, 동빙고 얼음은 왕실에 분배했다. 또 창덕궁 안에는 내빙고를 두어 궁궐의 수요를 맡았다. 이 빙고는 예조의 속아문에서 관장했다.
<경국대전> 예전의 반빙(半氷)조에는 여름철에 얼음을 당상관(정3품)과 70세 이상의 퇴직당상관에게 배분했고, 또한 활인서(병원)의 병자들과 전옥서(감옥)의 죄수들에게도 분급했다. 또한 종친과 대신 및 관아에는 목제 빙표(氷票)를 하사했으며, 이를 갖고 가면 빙표 내용대로 얼음을 분배받는다.
현존하는 석빙고의 건립년대와 보물번호를 적어보면, 경북의 청도(1713: 323호)ㆍ현풍(1730: 673호)ㆍ안동(1737: 305호)ㆍ경주(1738: 366호)와 경남의 창녕(1742: 310호)ㆍ영산(1742: 1739호)에 있으며, 북한에는 해주석빙고(1735)가 있다. 석빙고를 보면 공기대의 원리, 열전달, 단열효과, 경사빗면의 원리, 태양열의 차단 등 아주 다양한 과학적 방법으로 얼음을 보관하는 石氷庫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국 6기의 석빙고는 모두 낙동강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냉장고의 발명전에 얼음을 실생활에 사용한 것도 조상들의 지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