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3:30 (수)
시대정신 품은 동상 세우기
시대정신 품은 동상 세우기
  • 김혜란
  • 승인 2015.08.05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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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일본계 배우가 3D 컴퓨터로 제작한 ‘노랑나비 위안부 소녀상’을 전격 공개해 큰 화제가 됐다.

 사상 첫 오프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창작뮤지컬 ‘컴포트 우먼’이 개막 공연에서 감동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지난달 31일 맨해튼에서 올려진 ‘컴포트 우먼’ 첫 공연은 20대 한국 유학생 연출가가 기획하고 뉴욕서 활약하는 일본계 배우 7명 등 11개국 53명의 배우와 30여 명의 스텝이 힘을 합친 성공이었다. 일본계 배우가 제작한 ‘노랑나비 위안부 소녀상’은 공연을 위한 이벤트였다.

 우리나라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은 국내에서는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해외에선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2013년)과 미시간 사우스필드(2014년)에 차례로 건립됐고, 시카고에서 3호가 추진되고 있다.

 창원시민의 성금으로 만든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은 올해 광복절에는 볼 수 없다.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의 광장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하기로 했지만 인근지역 상인단체들의 다른 요구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설치예정지 주변에 술집이 많아서 취객들이 훼손하거나 추모성격이 있는 소녀상이 술집영업을 어렵게 할 거라는 우려가 작용했을 거라고 한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당초 예정된 자리에 세워지기로 최종 합의를 봤다니 다행스럽다. 마산 오동동과 창동일대가 3ㆍ15의거 발상지면서 일제강점기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중간집결지였다는 역사성을 살려서 결정한 것이다.

 인터넷에 창원의 기념물을 검색하면 시청 옆에 서 있는 최윤덕 장상 동상이 나온다.

 8억여 원을 들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창원광장 주변 경남도청 앞 큰길에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와 함께 함안군 나들목에는 이방실 장군의 승마상이 있고 의령군에는 홍의장군, 진주시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기념조형물은 1968년 국가 차원에서 세운 진해 북원 로터리 이순신 장군 동상 설치를 시작으로, 2000년대에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돼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문득 동상은 왜 세울까 궁금해진다.

 세계사로 보면 고대 이집트 파라오 동상부터 로마 공화정 당시 아우구스투스와 아우렐리우스 황제 동상들은 영웅숭배가 목적이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로뎅이 만든 발자크 동상, 칼레의 시민, 빅토르 위고 같은 걸작 동상을 비롯해서 유럽 각 나라가 자기 나라의 역사적 위인들을 기념비삼아 세우게 된다. 현대로 오면 런던의 넬슨 동상부터 미국의 워싱턴 기념탑, 중국에도 마오쩌뚱 주석,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 등이 떠오른다.

 우리 경남에 세워진 기념조형물인 동상들은 왜 하필 장군이 많을까. 장군이면 무관이다. 굳이 벼슬하고 나라에 공을 세운 누군가를 추모하려는 동상이라면 문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 벼슬한 사람들의 공적만 기념해야 할까?

 창원은 산업도시다. 비록 실컷 우려먹고 버리고 간 바람에 문화ㆍ관광도시로 재건해야 한다고 낑낑대고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차라리 자유수출지역을 비롯해서 산업도시였던 자원을 이용해 관광부문과 접목시킨다면, 세계 관광객 마음에 확 들어올 것 같다. 기념동상을 장군이 아니라 산업전사로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공장에서 뼈 빠지게 재봉틀 돌리고 금속에 철근 작업으로 오늘날의 한국과 창원을 있게 한 노동자들의 동상이, 산업근로자들의 동상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본군 위안부 소녀동상도 그렇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처럼 늘 참배하지는 못할망정,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동상이 쉴 곳도 이렇게 힘들게 정해져야 하는지 울컥한다. 우리가 위안부 소녀 동상 앞에서 와신상담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독도는 원래 우리땅이었으니 일본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세계 속에서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은 주인을 평생 사랑했다고 ‘개’ 동상도 세운다. 도쿄 시부야(?谷)에는 ‘충견 하치코(ハチ公)’ 동상이 있다. 세계 많은 관광객들이 그 동상 아래에서 개를 추모한다. 우리도 군견동상은 세운다고 들었지만 말이다.

 굳이 동상을 세워 무엇인가 말해야 하는 시대라면 국민 세금으로 장군상만 세울 것이 아니라 지역특색에 맞게, 시대정신에 맞도록 다양하게 동상대상을 선정할 일이다. 위안부 소녀 동상은 시대정신을 지키는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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