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2:50 (토)
맥주 2병이 뭐라고…
맥주 2병이 뭐라고…
  • 박성렬 기자
  • 승인 2015.08.04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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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렬 제2 사회부 국장
 따뜻한 남쪽나라 내 고향 남해에는 크고 작은 일들과 많고 많은 사연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7월 말, 전 직장 버스 회사에 같이 근무했던 정모 후배가 부인과 함께 사무실에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오래만이라며 어떻게 왔냐고 물으니 드링크 한 병을 내어놓았다. 그리곤 “형님 오늘 부인과 함께 모 방송국 아침마당에 출연키 위해 서울에 갑니다”며 말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버님 생전에 맥주 2병 못 드시게 한 일이 천추의 한이 돼 모 방송국에 투고를 했더니 채택이 됐다면서 그 일로 서울에 간다고 해서 잘 다녀오라고 말하면서 헤어졌다.

 그 내용이 하도 기가 막히고 절절히 너무나 애처로워 경남매일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필을 들었다. 주인공인 후배 정모 씨(50)는 남해군 이동면 초음리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특전부사관에 지원 입대했다. 10여 년의 특전부사관 중사로 임기를 마친 후 군에서 퇴직금을 수령해 부모님과 가족들이 기다라는 고향에 돌아왔다. 호주머니에 돈이 생기니 자신도 모르게 으쓱해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고향의 친구들과 회포를 나누기 위해 큰마음 먹고 맥주를 한 박스 샀다. 문제의 그 맥주를 시골집의 대청마루에 얼음물에 담가서 자랑스럽게 올려다 놓았다. 바로 그 시각 아버지가 땀을 흘리시면서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님은 마루 위에 있는 맥주 상자를 보고는 “이 맥주 마셔도 되느냐”고 하셨는데 그때 정씨는 짧은 소견으로 “안 됩니다. 조금 후에 친구들과 같이 먹을 겁니다”고 하면서 맥주를 못 드시게 했다. 이 무더운 날씨에 자식들을 위해 땀 흘려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대청마루에 있는 맥주를 보면서 얼마나 마시고 싶었을까. 그런데 나는 그때 정씨는 철이 없어 친구들만 생각하다 아버님의 그 속 타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젊은 시절 어느 날 고향 집에서 놀면서 먹고 지내기는 너무 막막해 정씨는 고향을 떠나 부산으로 무작정 직장을 찾아 돈을 벌려고 갔다. 객지에서 생활할 당시 맥주만 보면 그때 못 드시게 한 아버님의 맥주 사건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 지나가 마음 한구석이 계속 무거웠다. 아버님 생전에 시원한 맥주 한잔 대접해 드려야지 하면서도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어느덧 그 일이 있고 난 후 5년이라는 세월이 또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아버님께서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정씨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님의 영전에 마주 앉아 친지와 조문객의 도움으로 상례를 마쳤다. 불효막심한 자식을 용서하라시면서 말도 못하고 속으로 너무나 한없이 울었다. 조문객들과 술을 한잔 하는데 아버님 생각이 너무 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속마음으로 한없이 울었다. 그날 정씨는 너무나 아버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 못 먹는 술을 한잔 하고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산소에 갔다. 그날이 11월 보름이었는데 아버님의 산소는 춥지도 않고 달이 아주 훤히 밝았다. 산소에 도착해서 맥주를 한잔 올리는데 참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맥주 2병이면 아버지께서 실컷 드시고도 남았을 텐데 왜 그 맥주를 못 드시게 했을까? 생전에 잘 모셔야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옛말이 문득 생각나 가슴에 사무쳤다. 아버님이 별세하신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씨는 그 일이 한이 돼 맥주만 보면 아버님 생각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 일 이후 정씨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건강하던 정씨는 지금부터 11년 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가 열심히 재활훈련을 통해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 상태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 ‘보잘것없는 맥주 2병 때문에 아버님의 어려움이나 힘든 일은 다 잊어버리고 나 자신의 영위만 생각한 못난 아들을 저승에서도 용서하지 말고 미워하시고 편한 마음으로 편히 쉬시길…’ 그리고 이제는 아버님의 기일 날이면 꼭 맥주 사서 올린다.

 “이승에서 다 해드리지 못한 효도 저승에 계시는 아버님께 꼭 맥주 많이 사서 자주 뵙겠습니다. 안녕히 편안히 계십시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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