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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추념해야 할 것
광복절, 추념해야 할 것
  • 안명영
  • 승인 2015.07.30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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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8월 15일은 광복절, 일제 강점기는 빛을 잃은 기간이다. 암흑기에서 애국지사들의 희생으로 빛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찾고 지키려 했던 대상은 나라가 아니던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직후의 정황을 묘사한 러시아 신문이 금년 2월 발견됐다. 1911년 10월 24일자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신문 기사에 따르면,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와 수행원 3명을 권총으로 저격하고 “코레아 우라(한국 만세)”를 외친 뒤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됐다. 저격 직후 러시아와 일본의 수행원들은 정신이 나가 도망쳤으며 어느 러시아 장군은 네발로 기면서 겁먹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환영식을 필름에 담기 위해 러시아 기사가 카메라를 작동시켜 총격 순간을 촬영했다고 한다.

 안 의사는 강제로 주권을 빼앗은 일제의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의거 후 러시아 말로 절규했다.

 그런데 여러 책에서 국호를 코레아, 코리아, 꼬레아 그리고 대한제국, 대한민국, 대한국, 한국 등으로 다르게 명명하고 있다. 당시의 수사기록 또는 현장 영상을 통해 러시아어 우리 국호를 확인할 수 있고 표준 한글 국호가 있는데 다양하게 번역했다.

 국호는 어떻게 변했을까? 조선왕조실록 고종 34년(1897) 10월 11일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됐다. 지금 국호를 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韓이라 한다. 이는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날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니 ‘대한제국’이 된다.

 1919년 9월 상하이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고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바야흐로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미래의 횃불이다. 안 의사의 불길을 후세로 밝히는 비결은 의거를 제대로 전하는 것이다. 안 의사는 절박한 순간에 준비된 말로 외쳤을 것이다. 먼저 안 의사의 절규를 바르게 기록해야 하겠다.

 안 의사는 거사 이전 1909년 2월 7일(음력)에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는다. 의병운동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왼손 무명지의 한 개 관절을 자른 후 피로써 대한제국의 국기 태극기에 ‘大韓獨立’을 썼다. 다른 동지들도 손가락을 절단해 피로 서명하고 힘을 다해 대한독립을 도모하자고 열두 명은 맹세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단지동맹에서 국호를 대한이라고 했으니 안 의사의 우리말 외침은 ‘대한 만세!’가 아닐까.

 안 의사는 일제에 의한 암흑기를 단축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안중근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가산을 다 털어 의병활동 및 이역만리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서른하나에 생을 마감했다. 유족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령 목단강 시와 수이펀허 사이에 자리 잡는데 일본 밀정이 끈질기게 따라와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던 7살짜리 안 의사의 장남 분도에게 독이 든 과자를 먹여 죽였다. 어머니와 부인의 죽음에 날짜조차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안 의사를 비롯한 많은 선조들께 감사드리며 이날 만큼은 우리 모두 안 의사와 같이 외쳐보자. ‘대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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